YS 키즈, 노무현과 김무성은 왜 다른길을 걸었을까?

이상호 기자 | 기사입력 2015/11/22 [19:02]

YS 키즈, 노무현과 김무성은 왜 다른길을 걸었을까?

이상호 기자 | 입력 : 2015/11/22 [19:02]
▲ 5공 비리를 규명하는 청문회에서 스타로 떠오른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의내막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여러 가지 정치적인 업적과 아울러 인재를 보는 눈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현재 여권의 대선후보 1순위로 꼽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재,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들 모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들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연은 각별하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8년 부민사건의 변호를 맡은 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서 새 인물을 찾던 김 전 대통령의 눈에 띄게 됐고 부산 동구에 출마,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한다.

    

1년 뒤 정부와 여당이 5공 비리·광주 사태 특별위원회의 증인 출석을 거부한 것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으로 그를 불러 격려하고 용돈을 건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 1990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면서 추진한 민주정의당ㆍ통일민주당ㆍ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기점으로 갈라서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이 노태우, 김종필 등과 함께 합당을 선언한 것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밀실야합”, “민주화 운동의 배신”이라고 비판하면서 결별을 선언한 것.

    

하지만 두 사람이 완전히 결별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서 IMF 책임을 물어 김 전 대통령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5공 때나 광주청문회와는 달리 정책실책을 따지기 위한 자리에 굳이 전직대통령 증인 채택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극구 반대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 두 사람의 입장은 달라지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무능, 무지” 등의 발언으로 참여정부를 비판했고, 탄핵 정국에서는 “노무현을 정계에 입문 시킨 만큼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잘 되기를 바랐지만 그동안 여러차례 충고도 했다”며 “그럼에도 이를 소홀히 한 채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서 이런 결과가 온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야권은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대선 후보로 내걸어 대선에 나섰지만,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패배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 사진공동취재단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그가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아들”이라고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김 대표는 철저한 YS키즈 중 하나다. 그는 현재 상도동계의 ‘막내’로 불린다. 김 대표는 상도동계가 동교동계와 함께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지난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을 거쳐 1992년엔 대통령 후보 정책보좌역을 역임한 바 있다. 문민정부에서도 대통령 민정비서관과 사정1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거쳤고, 1996년 15대 총선 때는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기도 했다. 이후 김 대표는 친박계 의원으로 자리하면서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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