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친미→독재→독재찬양→국정화’ 굴레 속 대한민국史
‘대한민국 수립’과 ‘정부수립’의 차이점?
이상호 기자 | 입력 : 2015/11/09 [13:12]
| ▲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 ©한국청년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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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 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요”
이는 지난 1948년 제헌의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의장 자격으로 참여해 한 발언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1948년 8월 15일은 ‘정부가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이 전 대통령을 국부로 옹립하겠다고 주장하면서도, 그의 발언을 부정하는 ‘아전인수’ 격 태도는 바로 친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란 것이 정통 역사학계의 주장이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건국절을 주창하는 이들 가운데 친일파의 후손들이 많으며,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친일인명사전>이나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에 대응해 건국절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즉 친일의 후손들이나 친일파들이 ‘독립운동의 성과와 의의’, ‘친일부역’ 등의 행위 모두를 덮어버린 뒤 ‘반공’을 바탕으로 한 ‘건국’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회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이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 등의 활약은 빛이 바라게 된다. 반면 친일 부역 활동을 했고 해방 뒤 미군정에 협력해 한민당 등을 만들고 운영한 이들의 역할은 커지게 된다.
야당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해 정청래 의원 역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노림수가 바로 건국절 제정에 있다”면서 “상해임시정부 법통은 부정되고 항일운동도 친일부역도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이어 “1948년을 건국으로 치면 항일독립운동과 친일부역도 건국 이전의 일로 치부된다. 1948년을 건국으로 주장하는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가족사 중 부끄러운 부분인 친일의 역사를 지우고 싶은 사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친일파가 친미파로 옷을 입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관여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의 공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극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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