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지만 이 차를 불 지르고 싶을 정도예요."(소비자) "지금 상태에서는 저희가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정비업소) 자동차 등록대수 1600만대, 세계 13위 자동차 보유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만큼 질적인 수준도 보장되고 있을까? KBS-1TV '소비자고발' 제보란에는 새 차의 잦은 고장이나 불량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새 차를 산 지 한 달 만에 주행 중 시동이 꺼지고 녹이 스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가 하면, 심지어 새 차의 결함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끔찍한 사고까지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새 차로 교환하거나 환불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완성차 업체에서는 수리만 해줄 뿐 교환이나 환불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새 차를 둘러싼 소비자와 제작사 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렉스턴/ 구입 40일만에 차체 결함으로 전복사고 쌍용차 부품 문제없다며 잘못 인정 안해
반복되는 결함, 결함, 결함 렉스턴을 산 지 40일 만에 고속도로에서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 정영진씨. 이 사고로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사고 원인은 무엇일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차체를 지탱하는 중요 부품인 요크가 부서지면서 차가 뒤집힌 것으로 분석했다. 즉, 차량 자체의 결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는 부품에는 문제가 없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6년 11월, 윈스톰을 산 서정구씨는 한 달쯤 후 오르막길을 오르다 몇 번이나 시동이 꺼져 결국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수동 변속기어 차량 운전만 20년, 그런데 자동차 회사에서는 운전 미숙이라고 했다. 이런 증상을 경험한 건 비단 서씨뿐이 아니다. 2007년 6월 같은 차를 산 한상우씨도 일주일 만에 오르막길에서 시동이 꺼졌다. 차가 뒤로 밀리면서 뒤차와 부딪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회사의 주장대로 운전자의 운전 미숙 때문일까? ‘소비자고발’ 제작진은 2명의 전문 카레이서와 함께 문제의 새 차를 직접 시험해봤다. 그런데 시험을 시작하자마자 차 밑에서 심한 연기가 나면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전문 카레이서조차 몇 번이나 시동을 꺼뜨리고서야 겨우 오르막길을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에서는 그런 증상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우겼다.
운전 경력 18년째인 택시 운전기사 조정미씨. 2007년 3월, 큰 맘 먹고 SM-5 택시를 구입했다. 그런데 운전 중 세 번이나 시동이 꺼졌고 그때마다 영업을 할 수 없었다. 중고차를 탈 때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시동 꺼짐 현상이 세 번씩이나 발생하자 조씨는 다른 차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수리만 가능할 뿐 교환이나 환불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회사측 입장이다.
그랜드 스타렉스 동호회 회원들도 똑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차량 곳곳에 녹이 슬고 비가 오면 엔진룸 속으로 빗물이 샌다는 것이다. 엔진은 주요 전기장치가 연결된 부분으로, 물이 들어갈 경우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동호회 회원들은 주장한다. 사실 확인을 위해 30초 동안 차량에 물을 뿌린 후 후드를 열어봤다. 30초만 뿌렸는데도 엔진에 물이 흥건히 고였다. 차를 산 지 두 달 만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다.
윈스톰/ ‘수동 변속기어’ 오르막길에 시동 꺼져 GM측은 20년 경력자 보고 “운전미숙”
교환이나 환불 불가능한 이유 제보자 중 새 차에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 피해보상 규정’에는 새 차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부품을 교환하거나 수리해주도록 명시되어 있다. 즉, 새 차로 교환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단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차를 산 지 한 달 안에 중대한 결함이 두 번 이상, 1년 안에 네 번 이상 발생하거나 전체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을 때는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대 결함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이 피해보상 규정은 소비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지 않아도 법적 제재를 가할 길은 없다.
소비자 피해 보상 규정(재정경제부 고시 제2006-36호, 2006년 10월)에 따르면, 자동차는 품질보증 기간 이내에 ①재질이나 제조상의 결함으로 고장 발생 시에는 무상 수리(부품 교환 또는 기능장치 교환) ②차량 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2회 이상 발생했을 경우에는 제품 교환 또는 구입가 환급 ③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 동일 하자에 대해 3회까지 수리했으나 하자가 재발(4회째)하거나 중대한 결함과 관련된 수리 기간이 누계 30일(작업일수 기준)을 초과할 경우, 차령 12개월 이내에는 제품 교환 또는 필수 제 비용을 포함한 구입가 환급, 차령 12개월 초과 시에는 1차적으로 부품 교환을 원칙으로 하되 결함 잔존 시 관련기능 장치 교환(원동기, 동력전달 장치 등)을 해줘야 한다.
SM-5 택시/ 중고차에 없던 시동꺼짐 현상 3번이나 발생 새차 교환 요구하자 르노삼성 “수리만 가능”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자동차 회사가 중대 결함이라고 인정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2003년 렉스턴을 구입한 고동현씨. 차를 산 지 7개월 만에 엔진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자신의 차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렉스턴과 무쏘, 코란도 등을 구입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였다.
차량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인젝션 펌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젝션 펌프란 연료를 고압으로 엔진에 공급하는 부품이다. 정지 시 가만히 있어야 할 부품이 계속 흔들리면서 엔진으로 가는 연료의 양이 일정치 않아 차량이 흔들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 렉스턴의 경우 2000cc급 승용차보다 700㎏이나 무겁지만 드럼의 크기는 같다. 브레이크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차종은 이미 단종된 상태, 후속 차종에는 개선된 엔진과 브레이크 시스템이 장착되었다.
차량 떨림 현상이 심해지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오자 2003년 건설교통부는 제조사의 설계 당시 도면 등을 조사해 인젝션 펌프와 관련 부품의 설계, 제조·조립상의 결함 여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중대한 결함으로는 볼 수 없고 단지 떨림 현상이 장기적으로 계속 될 경우 내구 품질 등에 손상을 입힐 수 있으며 운전자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으므로 보증수리 기간에 관계없이 자동차 제조사에서 업무상으로 수리해주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없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시간을 들여 수리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다.
레몬법, 우리도 배우자 미국에는 새 차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있다. 미국 50개 주에서 시행 중인 '레몬법(오렌지인 줄 알고 레몬을 잘못 구입해 교환을 원할 때 매장 종업원과 종종 실랑이가 벌어진 데서 유래한 소비자 보호법)'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 제품과 자동차에 모두 적용되지만 실제로 레몬법의 효력이 강하게 발휘되는 대상은 자동차다. 자동차를 구입한 후 일정 횟수 이상 수리를 받았을 때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면 레몬법에 대한 설명서가 함께 딸려온다. 새 차를 구입했을 때뿐 아니라 임차했을 경우에도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레몬법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부품의 결함으로 2회 이상 수리하고 1회 이상 차량 제조사에 차량의 문제를 알렸을 경우, 차량을 인도받은 후 부품 문제로 30일 이상 정비소에 맡겼을 경우에 적용된다.
이제 자동차 업체 위주로 만든 규정을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 빼앗긴 소비자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하루 빨리 새 차의 결함 시 교환과 환불 규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