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시는 청동시대인 B.C 10세기경부터 이 땅의 조상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아왔다는 것을 부곡리와 산저리에 있는 고인돌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장수왕 63년인 475년 당동·금정동·부곡동·당정동 지역이 육목군에 편입되었고 대야미동·도마교동·둔대동·속달동 지역은 한산군(澣山郡)에 편입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때는 수리산 중턱에 수리사(脩理寺)가 창건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과천군과 시흥군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 12월16일 '군포시 승격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듬해인 1989년 1월1일을 기해 군포시로 승격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군포시는 인구 28만명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통신시설을 모두 지하로 매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는 지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한 친환경적인 도시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고, 시가지 뒤로 펼쳐진 수리산의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리산맥 한가운데는 슬기봉·태을봉·관모봉 등이 특출하여 그 빼어난 기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해당관모봉·천을봉·슬기봉 등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三吉
관모봉·천을봉·슬기봉 등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三吉에 해당군포시가(市歌)에는 '한 방울 이슬에도 수리산의 맑은 정기, 돌부리 하나에도 역사의 깊은 숨결'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걸출한 인물은 영검 있는 땅에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해발 489.2미터인 태을봉은 426.2미터인 관인봉과 함께 시가지 북서쪽 건방에 우뚝 솟아 있고 431.6미터인 슬기봉은 수리산과 함께 시가지 서쪽 태방에 한 쌍으로 높이 솟아 있어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후천방위로 북서쪽인 건방은 주역괘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자리인데 이 방위가 허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계절적으로 겨울철에 북서풍이 몰아쳐 기온에도 큰 변화를 주기 때문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살풍(殺風)'이라 하여 금기시 한다.
군포시 북서쪽은 높은 산으로 잘 감싸고 있어 겨울철 기온 또한 따뜻하다. '태을봉'의 태을이라는 말의 유래는 원래 중국 고대사상에서 '만물의 출원과 근원을 이르는 말'이라 했으며, <사기(史記)>의 '봉선서' 또는 '천관서(天官書)'라는 글에 의하면 '태을은 천신의 가장 거룩한 것의 이름' 또는 '자미궁'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북극성'을 태을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건방에 위치해 있는 태을봉은 길상스런 봉우리임이 분명하다.
산봉우리의 끝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겼기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문필봉이라고도 부른다.
'관모봉'은 산모양이 고위관리가 쓰는 모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안양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관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포 시민들은 관모가 아닌 '천을봉'으로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천을이란 태을과 함께 한 쌍의 자웅을 이루는 길상의 별인데 실제로 태을봉 옆에 나란히 솟아 있고, 풍수학에서도 천을봉과 태을봉이 한 쌍이 되어 나란히 솟아 있는 모습을 무척 귀하게 여긴다.
'슬기봉'은 탐랑목성(貪狼木星)에 속하는 존귀한 별의 이름이다. 탐랑이란 한묵과 문예를 주관하는 오행상의 목으로서 산천의 모습이 마치 곡식을 찧을 때 사용하는 절구봉처럼 끝이 둥글게 생겼다. 진안 마이산이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의 모습이 목성형이라면 아마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3길에 해당하는 해(亥)·경(庚)·진(震) 방위와 6수에 해당하는 간(艮)·병(丙)·손(巽)·신(辛)·태(兌)·정(丁) 방위에 있으면 '귀하기가 그지없다'고 했는데, 태을봉은 건해(북서쪽)의 해방위(亥方位)에 있고, 슬기봉은 경유(庚酉)의 경방(庚方)에 있으며, 정동쪽인 진방(震方)에는 백운산이 조응(照應)하고 있어 3길을 모두 갖추었다.
간방(북동쪽)에는 모락산, 손방(동남쪽)에는 오봉산, 태방(서쪽)에는 수리산이 잘 감싸고 있어 물형론(산 전체의 모습을 동식물의 모습에 비유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비유하면 시청이 있는 레포츠공원과 능내공원 등은 봉황의 알에 해당되어 마치 천상의 길상스런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봉황포란형이라 부른다.
풍수학에서는 물을 수신이라 하여 양으로 보고 산을 음으로 보기에 물길의 흐르는 방위가 매우 중요하다. 명당국세(明堂局勢·가장 핵심이 되는 지점을 산천이 각 방위 감싸고 있는 형국)를 중심으로 물이 들어오는 득수(得水)와 빠져 나가는 파수(破水)로 구분하게 되는데 득수는 반드시 길방위(吉方位)에서 들어와야 하고 흉방위로 빠져 나가야 길하다는 것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핵심요체다.
군포시의 경우 안양천의 발원이 되는 두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시내를 가로질러 안양방면으로 역류하고 있으니 왕곡동 골짜기인 동남 손방(巽方)에서 고천동을 거쳐 들어오는 물길과 폐기물 처리장 골짜기에서 둔전공원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는 서쪽 태방(兌方)의 물길이 득수(得水)가 되어 시내로 가로 질러 안양 호계대교가 있는 감계방위(坎癸方位)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이기법(풍수오행이론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의 12포태법(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땅에 묻히기까지의 순환과정을 12가지 길흉으로 분류하는 풍수비술의 하나)으로 보면 명당판이 금국정룡(물길이 계축·간인·갑묘 방위로 빠져나갈 경우 오행상 금의국세로 보고 각 방위에서 들어 오는 산머리의 길흉을 구체적을 판단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금국정룡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므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국정룡의 풍수국세에 대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 무학대사가 풍수국세를 살피다가 한양 내 명당수(지금의 청계천)가 동쪽인 갑묘 방위로 빠져나가 한강과 합류하는 것을 보고 한양의 명당국세가 금국이니 궁궐을 지을 때 배산(背山)을 인왕산으로 하고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아 동향판으로 궁궐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당시 실력자인 정도전 등은 조선의 국시로 유교로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배불 정책을 표방하고 있던 터라 불교 지도자의 의도를 꺾고자 "중국 어디를 보아도 제왕은 모두 남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 동향이란 당치 않다"는 취지로 반대하여 결국은 현 경복궁 터로 궁궐을 정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탄식하면서 "그렇게 되면 왕통을 방계(傍系)에서 잇게 될 것이며 150년 이내 나라에 큰 혼란이 있게 되고 수운에 해당되는 자년(子年)과 진년(辰年)에는 큰 병화가 닥칠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과연 무학대사의 말대로 태종 때는 왕자의 난이 있었고 이조 28명의 왕 중 대부분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같은 큰 난리를 겪게 되었다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풍수이기법상 금국의 내용을 보면 경유방은 장생(長生), 손사방(巽巳方)은 제왕(帝王), 정미방(丁未方)은 관대(冠帶), 병오방(丙午方)은 임관(任官)에 해당되는 길방위이니 배산(背山)할 때는 이 방위를 선택해야 길하다는 이론인데, 인왕산은 경유방에 있는 장생으로서 장구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방위이지만 경복궁이 서 있는 곳은 절방(絶方)이어서 흉하다.
방계혈족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은 장손을 주관하는 좌청룡인 낙산이 극히 허약한 데 비해 방계쪽을 주관하는 우백호가 인왕산으로서 청룡에 비해 3배 이상 드높아 좌우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군포시의 풍수형국에 대해 도선비기(道詵泌記)에 의한 특수비법으로 길흉 판단을 해보기로 하자.
후천방위(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8쾌상의 방위)를 선천방위수로 바꾸어 입좌득파(좌를 중심으로 산과 물이 모여 드는 요소) 해당 방위수를 합한 다음 8로 나누어서 남은 수를 중궁도(낙서에 의한 후천 8방위 상의 중심이 되는 위치) 중심에 대입하여 다른 방위수가 변화하는 이치에 따라 산천의 길흉판단을 정하는 것이 도선국사의 특수풍수비술이다.
배산이 되는 내룡은 방겁(妨劫)과 호아(護我)와 복종(服從)으로서 역시 길격이 된다. 이러한 풍수형국에 사는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정의감이 강하며 부귀를 누리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순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에는 단결심이 남다르게 강한 편이다.
경기도 군포시는 청동시대인 B.C 10세기경부터 이 땅의 조상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아왔다는 것을 부곡리와 산저리에 있는 고인돌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장수왕 63년인 475년 당동·금정동·부곡동·당정동 지역이 육목군에 편입되었고 대야미동·도마교동·둔대동·속달동 지역은 한산군(澣山郡)에 편입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때는 수리산 중턱에 수리사(脩理寺)가 창건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과천군과 시흥군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 12월16일 '군포시 승격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듬해인 1989년 1월1일을 기해 군포시로 승격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군포시는 인구 28만명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통신시설을 모두 지하로 매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는 지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한 친환경적인 도시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고, 시가지 뒤로 펼쳐진 수리산의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리산맥 한가운데는 슬기봉·태을봉·관모봉 등이 특출하여 그 빼어난 기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북동쪽엔 모락산, 동남쪽엔 오봉산, 서쪽엔 수리산 감싼 봉황포란형
군포시가(市歌)에는 '한 방울 이슬에도 수리산의 맑은 정기, 돌부리 하나에도 역사의 깊은 숨결'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걸출한 인물은 영검 있는 땅에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해발 489.2미터인 태을봉은 426.2미터인 관인봉과 함께 시가지 북서쪽 건방에 우뚝 솟아 있고 431.6미터인 슬기봉은 수리산과 함께 시가지 서쪽 태방에 한 쌍으로 높이 솟아 있어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후천방위로 북서쪽인 건방은 주역괘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자리인데 이 방위가 허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계절적으로 겨울철에 북서풍이 몰아쳐 기온에도 큰 변화를 주기 때문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살풍(殺風)'이라 하여 금기시 한다.
군포시 북서쪽은 높은 산으로 잘 감싸고 있어 겨울철 기온 또한 따뜻하다. '태을봉'의 태을이라는 말의 유래는 원래 중국 고대사상에서 '만물의 출원과 근원을 이르는 말'이라 했으며, <사기(史記)>의 '봉선서' 또는 '천관서(天官書)'라는 글에 의하면 '태을은 천신의 가장 거룩한 것의 이름' 또는 '자미궁'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북극성'을 태을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건방에 위치해 있는 태을봉은 길상스런 봉우리임이 분명하다.
산봉우리의 끝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겼기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문필봉이라고도 부른다.
'관모봉'은 산모양이 고위관리가 쓰는 모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안양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관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포 시민들은 관모가 아닌 '천을봉'으로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천을이란 태을과 함께 한 쌍의 자웅을 이루는 길상의 별인데 실제로 태을봉 옆에 나란히 솟아 있고, 풍수학에서도 천을봉과 태을봉이 한 쌍이 되어 나란히 솟아 있는 모습을 무척 귀하게 여긴다.
'슬기봉'은 탐랑목성(貪狼木星)에 속하는 존귀한 별의 이름이다. 탐랑이란 한묵과 문예를 주관하는 오행상의 목으로서 산천의 모습이 마치 곡식을 찧을 때 사용하는 절구봉처럼 끝이 둥글게 생겼다. 진안 마이산이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의 모습이 목성형이라면 아마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3길에 해당하는 해(亥)·경(庚)·진(震) 방위와 6수에 해당하는 간(艮)·병(丙)·손(巽)·신(辛)·태(兌)·정(丁) 방위에 있으면 '귀하기가 그지없다'고 했는데, 태을봉은 건해(북서쪽)의 해방위(亥方位)에 있고, 슬기봉은 경유(庚酉)의 경방(庚方)에 있으며, 정동쪽인 진방(震方)에는 백운산이 조응(照應)하고 있어 3길을 모두 갖추었다.
간방(북동쪽)에는 모락산, 손방(동남쪽)에는 오봉산, 태방(서쪽)에는 수리산이 잘 감싸고 있어 물형론(산 전체의 모습을 동식물의 모습에 비유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비유하면 시청이 있는 레포츠공원과 능내공원 등은 봉황의 알에 해당되어 마치 천상의 길상스런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봉황포란형이라 부른다.
풍수학에서는 물을 수신이라 하여 양으로 보고 산을 음으로 보기에 물길의 흐르는 방위가 매우 중요하다. 명당국세(明堂局勢·가장 핵심이 되는 지점을 산천이 각 방위 감싸고 있는 형국)를 중심으로 물이 들어오는 득수(得水)와 빠져 나가는 파수(破水)로 구분하게 되는데 득수는 반드시 길방위(吉方位)에서 들어와야 하고 흉방위로 빠져 나가야 길하다는 것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핵심요체다.
군포시의 경우 안양천의 발원이 되는 두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시내를 가로질러 안양방면으로 역류하고 있으니 왕곡동 골짜기인 동남 손방(巽方)에서 고천동을 거쳐 들어오는 물길과 폐기물 처리장 골짜기에서 둔전공원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는 서쪽 태방(兌方)의 물길이 득수(得水)가 되어 시내로 가로 질러 안양 호계대교가 있는 감계방위(坎癸方位)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이기법(풍수오행이론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의 12포태법(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땅에 묻히기까지의 순환과정을 12가지 길흉으로 분류하는 풍수비술의 하나)으로 보면 명당판이 금국정룡(물길이 계축·간인·갑묘 방위로 빠져나갈 경우 오행상 금의국세로 보고 각 방위에서 들어 오는 산머리의 길흉을 구체적을 판단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금국정룡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므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국정룡의 풍수국세에 대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 무학대사가 풍수국세를 살피다가 한양 내 명당수(지금의 청계천)가 동쪽인 갑묘 방위로 빠져나가 한강과 합류하는 것을 보고 한양의 명당국세가 금국이니 궁궐을 지을 때 배산(背山)을 인왕산으로 하고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아 동향판으로 궁궐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당시 실력자인 정도전 등은 조선의 국시로 유교로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배불 정책을 표방하고 있던 터라 불교 지도자의 의도를 꺾고자 "중국 어디를 보아도 제왕은 모두 남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 동향이란 당치 않다"는 취지로 반대하여 결국은 현 경복궁 터로 궁궐을 정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탄식하면서 "그렇게 되면 왕통을 방계(傍系)에서 잇게 될 것이며 150년 이내 나라에 큰 혼란이 있게 되고 수운에 해당되는 자년(子年)과 진년(辰年)에는 큰 병화가 닥칠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과연 무학대사의 말대로 태종 때는 왕자의 난이 있었고 이조 28명의 왕 중 대부분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같은 큰 난리를 겪게 되었다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풍수이기법상 금국의 내용을 보면 경유방은 장생(長生), 손사방(巽巳方)은 제왕(帝王), 정미방(丁未方)은 관대(冠帶), 병오방(丙午方)은 임관(任官)에 해당되는 길방위이니 배산(背山)할 때는 이 방위를 선택해야 길하다는 이론인데, 인왕산은 경유방에 있는 장생으로서 장구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방위이지만 경복궁이 서 있는 곳은 절방(絶方)이어서 흉하다.
방계혈족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은 장손을 주관하는 좌청룡인 낙산이 극히 허약한 데 비해 방계쪽을 주관하는 우백호가 인왕산으로서 청룡에 비해 3배 이상 드높아 좌우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군포시의 풍수형국에 대해 도선비기(道詵泌記)에 의한 특수비법으로 길흉 판단을 해보기로 하자.
후천방위(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8쾌상의 방위)를 선천방위수로 바꾸어 입좌득파(좌를 중심으로 산과 물이 모여 드는 요소) 해당 방위수를 합한 다음 8로 나누어서 남은 수를 중궁도(낙서에 의한 후천 8방위 상의 중심이 되는 위치) 중심에 대입하여 다른 방위수가 변화하는 이치에 따라 산천의 길흉판단을 정하는 것이 도선국사의 특수풍수비술이다.
배산이 되는 내룡은 방겁(妨劫)과 호아(護我)와 복종(服從)으로서 역시 길격이 된다. 이러한 풍수형국에 사는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정의감이 강하며 부귀를 누리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순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에는 단결심이 남다르게 강한 편이다.
길격에 사는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정의감 강하며 富貴도 누려
경기도 군포시는 청동시대인 B.C 10세기경부터 이 땅의 조상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아왔다는 것을 부곡리와 산저리에 있는 고인돌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장수왕 63년인 475년 당동·금정동·부곡동·당정동 지역이 육목군에 편입되었고 대야미동·도마교동·둔대동·속달동 지역은 한산군(澣山郡)에 편입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때는 수리산 중턱에 수리사(脩理寺)가 창건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과천군과 시흥군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 12월16일 '군포시 승격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듬해인 1989년 1월1일을 기해 군포시로 승격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군포시는 인구 28만명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통신시설을 모두 지하로 매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는 지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한 친환경적인 도시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고, 시가지 뒤로 펼쳐진 수리산의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리산맥 한가운데는 슬기봉·태을봉·관모봉 등이 특출하여 그 빼어난 기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군포시가(市歌)에는 '한 방울 이슬에도 수리산의 맑은 정기, 돌부리 하나에도 역사의 깊은 숨결'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걸출한 인물은 영검 있는 땅에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해발 489.2미터인 태을봉은 426.2미터인 관인봉과 함께 시가지 북서쪽 건방에 우뚝 솟아 있고 431.6미터인 슬기봉은 수리산과 함께 시가지 서쪽 태방에 한 쌍으로 높이 솟아 있어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후천방위로 북서쪽인 건방은 주역괘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자리인데 이 방위가 허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계절적으로 겨울철에 북서풍이 몰아쳐 기온에도 큰 변화를 주기 때문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살풍(殺風)'이라 하여 금기시 한다.
군포시 북서쪽은 높은 산으로 잘 감싸고 있어 겨울철 기온 또한 따뜻하다. '태을봉'의 태을이라는 말의 유래는 원래 중국 고대사상에서 '만물의 출원과 근원을 이르는 말'이라 했으며, <사기(史記)>의 '봉선서' 또는 '천관서(天官書)'라는 글에 의하면 '태을은 천신의 가장 거룩한 것의 이름' 또는 '자미궁'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북극성'을 태을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건방에 위치해 있는 태을봉은 길상스런 봉우리임이 분명하다.
산봉우리의 끝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겼기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문필봉이라고도 부른다.
'관모봉'은 산모양이 고위관리가 쓰는 모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안양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관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포 시민들은 관모가 아닌 '천을봉'으로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천을이란 태을과 함께 한 쌍의 자웅을 이루는 길상의 별인데 실제로 태을봉 옆에 나란히 솟아 있고, 풍수학에서도 천을봉과 태을봉이 한 쌍이 되어 나란히 솟아 있는 모습을 무척 귀하게 여긴다.
'슬기봉'은 탐랑목성(貪狼木星)에 속하는 존귀한 별의 이름이다. 탐랑이란 한묵과 문예를 주관하는 오행상의 목으로서 산천의 모습이 마치 곡식을 찧을 때 사용하는 절구봉처럼 끝이 둥글게 생겼다. 진안 마이산이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의 모습이 목성형이라면 아마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3길에 해당하는 해(亥)·경(庚)·진(震) 방위와 6수에 해당하는 간(艮)·병(丙)·손(巽)·신(辛)·태(兌)·정(丁) 방위에 있으면 '귀하기가 그지없다'고 했는데, 태을봉은 건해(북서쪽)의 해방위(亥方位)에 있고, 슬기봉은 경유(庚酉)의 경방(庚方)에 있으며, 정동쪽인 진방(震方)에는 백운산이 조응(照應)하고 있어 3길을 모두 갖추었다.
간방(북동쪽)에는 모락산, 손방(동남쪽)에는 오봉산, 태방(서쪽)에는 수리산이 잘 감싸고 있어 물형론(산 전체의 모습을 동식물의 모습에 비유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비유하면 시청이 있는 레포츠공원과 능내공원 등은 봉황의 알에 해당되어 마치 천상의 길상스런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봉황포란형이라 부른다.
풍수학에서는 물을 수신이라 하여 양으로 보고 산을 음으로 보기에 물길의 흐르는 방위가 매우 중요하다. 명당국세(明堂局勢·가장 핵심이 되는 지점을 산천이 각 방위 감싸고 있는 형국)를 중심으로 물이 들어오는 득수(得水)와 빠져 나가는 파수(破水)로 구분하게 되는데 득수는 반드시 길방위(吉方位)에서 들어와야 하고 흉방위로 빠져 나가야 길하다는 것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핵심요체다.
군포시의 경우 안양천의 발원이 되는 두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시내를 가로질러 안양방면으로 역류하고 있으니 왕곡동 골짜기인 동남 손방(巽方)에서 고천동을 거쳐 들어오는 물길과 폐기물 처리장 골짜기에서 둔전공원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는 서쪽 태방(兌方)의 물길이 득수(得水)가 되어 시내로 가로 질러 안양 호계대교가 있는 감계방위(坎癸方位)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이기법(풍수오행이론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의 12포태법(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땅에 묻히기까지의 순환과정을 12가지 길흉으로 분류하는 풍수비술의 하나)으로 보면 명당판이 금국정룡(물길이 계축·간인·갑묘 방위로 빠져나갈 경우 오행상 금의국세로 보고 각 방위에서 들어 오는 산머리의 길흉을 구체적을 판단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금국정룡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므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국정룡의 풍수국세에 대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 무학대사가 풍수국세를 살피다가 한양 내 명당수(지금의 청계천)가 동쪽인 갑묘 방위로 빠져나가 한강과 합류하는 것을 보고 한양의 명당국세가 금국이니 궁궐을 지을 때 배산(背山)을 인왕산으로 하고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아 동향판으로 궁궐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당시 실력자인 정도전 등은 조선의 국시로 유교로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배불 정책을 표방하고 있던 터라 불교 지도자의 의도를 꺾고자 "중국 어디를 보아도 제왕은 모두 남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 동향이란 당치 않다"는 취지로 반대하여 결국은 현 경복궁 터로 궁궐을 정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탄식하면서 "그렇게 되면 왕통을 방계(傍系)에서 잇게 될 것이며 150년 이내 나라에 큰 혼란이 있게 되고 수운에 해당되는 자년(子年)과 진년(辰年)에는 큰 병화가 닥칠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과연 무학대사의 말대로 태종 때는 왕자의 난이 있었고 이조 28명의 왕 중 대부분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같은 큰 난리를 겪게 되었다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풍수이기법상 금국의 내용을 보면 경유방은 장생(長生), 손사방(巽巳方)은 제왕(帝王), 정미방(丁未方)은 관대(冠帶), 병오방(丙午方)은 임관(任官)에 해당되는 길방위이니 배산(背山)할 때는 이 방위를 선택해야 길하다는 이론인데, 인왕산은 경유방에 있는 장생으로서 장구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방위이지만 경복궁이 서 있는 곳은 절방(絶方)이어서 흉하다. 방계혈족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은 장손을 주관하는 좌청룡인 낙산이 극히 허약한 데 비해 방계쪽을 주관하는 우백호가 인왕산으로서 청룡에 비해 3배 이상 드높아 좌우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군포시의 풍수형국에 대해 도선비기(道詵泌記)에 의한 특수비법으로 길흉 판단을 해보기로 하자. 후천방위(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8쾌상의 방위)를 선천방위수로 바꾸어 입좌득파(좌를 중심으로 산과 물이 모여 드는 요소) 해당 방위수를 합한 다음 8로 나누어서 남은 수를 중궁도(낙서에 의한 후천 8방위 상의 중심이 되는 위치) 중심에 대입하여 다른 방위수가 변화하는 이치에 따라 산천의 길흉판단을 정하는 것이 도선국사의 특수풍수비술이다. 배산이 되는 내룡은 방겁(妨劫)과 호아(護我)와 복종(服從)으로서 역시 길격이 된다. 이러한 풍수형국에 사는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정의감이 강하며 부귀를 누리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순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에는 단결심이 남다르게 강한 편이다. 경기도 군포시는 청동시대인 B.C 10세기경부터 이 땅의 조상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아왔다는 것을 부곡리와 산저리에 있는 고인돌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장수왕 63년인 475년 당동·금정동·부곡동·당정동 지역이 육목군에 편입되었고 대야미동·도마교동·둔대동·속달동 지역은 한산군(澣山郡)에 편입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때는 수리산 중턱에 수리사(脩理寺)가 창건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과천군과 시흥군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 12월16일 '군포시 승격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듬해인 1989년 1월1일을 기해 군포시로 승격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군포시는 인구 28만명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통신시설을 모두 지하로 매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는 지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한 친환경적인 도시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고, 시가지 뒤로 펼쳐진 수리산의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리산맥 한가운데는 슬기봉·태을봉·관모봉 등이 특출하여 그 빼어난 기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군포시가(市歌)에는 '한 방울 이슬에도 수리산의 맑은 정기, 돌부리 하나에도 역사의 깊은 숨결'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걸출한 인물은 영검 있는 땅에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해발 489.2미터인 태을봉은 426.2미터인 관인봉과 함께 시가지 북서쪽 건방에 우뚝 솟아 있고 431.6미터인 슬기봉은 수리산과 함께 시가지 서쪽 태방에 한 쌍으로 높이 솟아 있어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후천방위로 북서쪽인 건방은 주역괘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자리인데 이 방위가 허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계절적으로 겨울철에 북서풍이 몰아쳐 기온에도 큰 변화를 주기 때문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살풍(殺風)'이라 하여 금기시 한다. 군포시 북서쪽은 높은 산으로 잘 감싸고 있어 겨울철 기온 또한 따뜻하다. '태을봉'의 태을이라는 말의 유래는 원래 중국 고대사상에서 '만물의 출원과 근원을 이르는 말'이라 했으며, <사기(史記)>의 '봉선서' 또는 '천관서(天官書)'라는 글에 의하면 '태을은 천신의 가장 거룩한 것의 이름' 또는 '자미궁'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북극성'을 태을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건방에 위치해 있는 태을봉은 길상스런 봉우리임이 분명하다. 산봉우리의 끝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겼기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문필봉이라고도 부른다. '관모봉'은 산모양이 고위관리가 쓰는 모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안양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관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포 시민들은 관모가 아닌 '천을봉'으로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천을이란 태을과 함께 한 쌍의 자웅을 이루는 길상의 별인데 실제로 태을봉 옆에 나란히 솟아 있고, 풍수학에서도 천을봉과 태을봉이 한 쌍이 되어 나란히 솟아 있는 모습을 무척 귀하게 여긴다. '슬기봉'은 탐랑목성(貪狼木星)에 속하는 존귀한 별의 이름이다. 탐랑이란 한묵과 문예를 주관하는 오행상의 목으로서 산천의 모습이 마치 곡식을 찧을 때 사용하는 절구봉처럼 끝이 둥글게 생겼다. 진안 마이산이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의 모습이 목성형이라면 아마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3길에 해당하는 해(亥)·경(庚)·진(震) 방위와 6수에 해당하는 간(艮)·병(丙)·손(巽)·신(辛)·태(兌)·정(丁) 방위에 있으면 '귀하기가 그지없다'고 했는데, 태을봉은 건해(북서쪽)의 해방위(亥方位)에 있고, 슬기봉은 경유(庚酉)의 경방(庚方)에 있으며, 정동쪽인 진방(震方)에는 백운산이 조응(照應)하고 있어 3길을 모두 갖추었다. 간방(북동쪽)에는 모락산, 손방(동남쪽)에는 오봉산, 태방(서쪽)에는 수리산이 잘 감싸고 있어 물형론(산 전체의 모습을 동식물의 모습에 비유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비유하면 시청이 있는 레포츠공원과 능내공원 등은 봉황의 알에 해당되어 마치 천상의 길상스런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봉황포란형이라 부른다. 풍수학에서는 물을 수신이라 하여 양으로 보고 산을 음으로 보기에 물길의 흐르는 방위가 매우 중요하다. 명당국세(明堂局勢·가장 핵심이 되는 지점을 산천이 각 방위 감싸고 있는 형국)를 중심으로 물이 들어오는 득수(得水)와 빠져 나가는 파수(破水)로 구분하게 되는데 득수는 반드시 길방위(吉方位)에서 들어와야 하고 흉방위로 빠져 나가야 길하다는 것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핵심요체다. 군포시의 경우 안양천의 발원이 되는 두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시내를 가로질러 안양방면으로 역류하고 있으니 왕곡동 골짜기인 동남 손방(巽方)에서 고천동을 거쳐 들어오는 물길과 폐기물 처리장 골짜기에서 둔전공원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는 서쪽 태방(兌方)의 물길이 득수(得水)가 되어 시내로 가로 질러 안양 호계대교가 있는 감계방위(坎癸方位)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이기법(풍수오행이론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의 12포태법(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땅에 묻히기까지의 순환과정을 12가지 길흉으로 분류하는 풍수비술의 하나)으로 보면 명당판이 금국정룡(물길이 계축·간인·갑묘 방위로 빠져나갈 경우 오행상 금의국세로 보고 각 방위에서 들어 오는 산머리의 길흉을 구체적을 판단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금국정룡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므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국정룡의 풍수국세에 대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 무학대사가 풍수국세를 살피다가 한양 내 명당수(지금의 청계천)가 동쪽인 갑묘 방위로 빠져나가 한강과 합류하는 것을 보고 한양의 명당국세가 금국이니 궁궐을 지을 때 배산(背山)을 인왕산으로 하고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아 동향판으로 궁궐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당시 실력자인 정도전 등은 조선의 국시로 유교로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배불 정책을 표방하고 있던 터라 불교 지도자의 의도를 꺾고자 "중국 어디를 보아도 제왕은 모두 남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 동향이란 당치 않다"는 취지로 반대하여 결국은 현 경복궁 터로 궁궐을 정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탄식하면서 "그렇게 되면 왕통을 방계(傍系)에서 잇게 될 것이며 150년 이내 나라에 큰 혼란이 있게 되고 수운에 해당되는 자년(子年)과 진년(辰年)에는 큰 병화가 닥칠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과연 무학대사의 말대로 태종 때는 왕자의 난이 있었고 이조 28명의 왕 중 대부분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같은 큰 난리를 겪게 되었다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풍수이기법상 금국의 내용을 보면 경유방은 장생(長生), 손사방(巽巳方)은 제왕(帝王), 정미방(丁未方)은 관대(冠帶), 병오방(丙午方)은 임관(任官)에 해당되는 길방위이니 배산(背山)할 때는 이 방위를 선택해야 길하다는 이론인데, 인왕산은 경유방에 있는 장생으로서 장구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방위이지만 경복궁이 서 있는 곳은 절방(絶方)이어서 흉하다. 방계혈족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은 장손을 주관하는 좌청룡인 낙산이 극히 허약한 데 비해 방계쪽을 주관하는 우백호가 인왕산으로서 청룡에 비해 3배 이상 드높아 좌우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군포시의 풍수형국에 대해 도선비기(道詵泌記)에 의한 특수비법으로 길흉 판단을 해보기로 하자. 후천방위(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8쾌상의 방위)를 선천방위수로 바꾸어 입좌득파(좌를 중심으로 산과 물이 모여 드는 요소) 해당 방위수를 합한 다음 8로 나누어서 남은 수를 중궁도(낙서에 의한 후천 8방위 상의 중심이 되는 위치) 중심에 대입하여 다른 방위수가 변화하는 이치에 따라 산천의 길흉판단을 정하는 것이 도선국사의 특수풍수비술이다. 배산이 되는 내룡은 방겁(妨劫)과 호아(護我)와 복종(服從)으로서 역시 길격이 된다. 이러한 풍수형국에 사는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정의감이 강하며 부귀를 누리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순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에는 단결심이 남다르게 강한 편이다. 경기도 군포시는 청동시대인 B.C 10세기경부터 이 땅의 조상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아왔다는 것을 부곡리와 산저리에 있는 고인돌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장수왕 63년인 475년 당동·금정동·부곡동·당정동 지역이 육목군에 편입되었고 대야미동·도마교동·둔대동·속달동 지역은 한산군(澣山郡)에 편입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때는 수리산 중턱에 수리사(脩理寺)가 창건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과천군과 시흥군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 12월16일 '군포시 승격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듬해인 1989년 1월1일을 기해 군포시로 승격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군포시는 인구 28만명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통신시설을 모두 지하로 매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는 지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한 친환경적인 도시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고, 시가지 뒤로 펼쳐진 수리산의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리산맥 한가운데는 슬기봉·태을봉·관모봉 등이 특출하여 그 빼어난 기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군포시가(市歌)에는 '한 방울 이슬에도 수리산의 맑은 정기, 돌부리 하나에도 역사의 깊은 숨결'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걸출한 인물은 영검 있는 땅에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해발 489.2미터인 태을봉은 426.2미터인 관인봉과 함께 시가지 북서쪽 건방에 우뚝 솟아 있고 431.6미터인 슬기봉은 수리산과 함께 시가지 서쪽 태방에 한 쌍으로 높이 솟아 있어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후천방위로 북서쪽인 건방은 주역괘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자리인데 이 방위가 허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계절적으로 겨울철에 북서풍이 몰아쳐 기온에도 큰 변화를 주기 때문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살풍(殺風)'이라 하여 금기시 한다. 군포시 북서쪽은 높은 산으로 잘 감싸고 있어 겨울철 기온 또한 따뜻하다. '태을봉'의 태을이라는 말의 유래는 원래 중국 고대사상에서 '만물의 출원과 근원을 이르는 말'이라 했으며, <사기(史記)>의 '봉선서' 또는 '천관서(天官書)'라는 글에 의하면 '태을은 천신의 가장 거룩한 것의 이름' 또는 '자미궁'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북극성'을 태을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건방에 위치해 있는 태을봉은 길상스런 봉우리임이 분명하다. 산봉우리의 끝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겼기에 풍수학에서는 이를 문필봉이라고도 부른다. '관모봉'은 산모양이 고위관리가 쓰는 모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안양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관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포 시민들은 관모가 아닌 '천을봉'으로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천을이란 태을과 함께 한 쌍의 자웅을 이루는 길상의 별인데 실제로 태을봉 옆에 나란히 솟아 있고, 풍수학에서도 천을봉과 태을봉이 한 쌍이 되어 나란히 솟아 있는 모습을 무척 귀하게 여긴다. '슬기봉'은 탐랑목성(貪狼木星)에 속하는 존귀한 별의 이름이다. 탐랑이란 한묵과 문예를 주관하는 오행상의 목으로서 산천의 모습이 마치 곡식을 찧을 때 사용하는 절구봉처럼 끝이 둥글게 생겼다. 진안 마이산이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의 모습이 목성형이라면 아마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산봉우리들이 풍수방위학상 3길에 해당하는 해(亥)·경(庚)·진(震) 방위와 6수에 해당하는 간(艮)·병(丙)·손(巽)·신(辛)·태(兌)·정(丁) 방위에 있으면 '귀하기가 그지없다'고 했는데, 태을봉은 건해(북서쪽)의 해방위(亥方位)에 있고, 슬기봉은 경유(庚酉)의 경방(庚方)에 있으며, 정동쪽인 진방(震方)에는 백운산이 조응(照應)하고 있어 3길을 모두 갖추었다. 간방(북동쪽)에는 모락산, 손방(동남쪽)에는 오봉산, 태방(서쪽)에는 수리산이 잘 감싸고 있어 물형론(산 전체의 모습을 동식물의 모습에 비유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비유하면 시청이 있는 레포츠공원과 능내공원 등은 봉황의 알에 해당되어 마치 천상의 길상스런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봉황포란형이라 부른다. 풍수학에서는 물을 수신이라 하여 양으로 보고 산을 음으로 보기에 물길의 흐르는 방위가 매우 중요하다. 명당국세(明堂局勢·가장 핵심이 되는 지점을 산천이 각 방위 감싸고 있는 형국)를 중심으로 물이 들어오는 득수(得水)와 빠져 나가는 파수(破水)로 구분하게 되는데 득수는 반드시 길방위(吉方位)에서 들어와야 하고 흉방위로 빠져 나가야 길하다는 것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핵심요체다. 군포시의 경우 안양천의 발원이 되는 두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시내를 가로질러 안양방면으로 역류하고 있으니 왕곡동 골짜기인 동남 손방(巽方)에서 고천동을 거쳐 들어오는 물길과 폐기물 처리장 골짜기에서 둔전공원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는 서쪽 태방(兌方)의 물길이 득수(得水)가 되어 시내로 가로 질러 안양 호계대교가 있는 감계방위(坎癸方位)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이기법(풍수오행이론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의 12포태법(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땅에 묻히기까지의 순환과정을 12가지 길흉으로 분류하는 풍수비술의 하나)으로 보면 명당판이 금국정룡(물길이 계축·간인·갑묘 방위로 빠져나갈 경우 오행상 금의국세로 보고 각 방위에서 들어 오는 산머리의 길흉을 구체적을 판단하는 풍수술법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금국정룡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므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국정룡의 풍수국세에 대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 무학대사가 풍수국세를 살피다가 한양 내 명당수(지금의 청계천)가 동쪽인 갑묘 방위로 빠져나가 한강과 합류하는 것을 보고 한양의 명당국세가 금국이니 궁궐을 지을 때 배산(背山)을 인왕산으로 하고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아 동향판으로 궁궐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당시 실력자인 정도전 등은 조선의 국시로 유교로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배불 정책을 표방하고 있던 터라 불교 지도자의 의도를 꺾고자 "중국 어디를 보아도 제왕은 모두 남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 동향이란 당치 않다"는 취지로 반대하여 결국은 현 경복궁 터로 궁궐을 정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탄식하면서 "그렇게 되면 왕통을 방계(傍系)에서 잇게 될 것이며 150년 이내 나라에 큰 혼란이 있게 되고 수운에 해당되는 자년(子年)과 진년(辰年)에는 큰 병화가 닥칠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과연 무학대사의 말대로 태종 때는 왕자의 난이 있었고 이조 28명의 왕 중 대부분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같은 큰 난리를 겪게 되었다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풍수이기법상 금국의 내용을 보면 경유방은 장생(長生), 손사방(巽巳方)은 제왕(帝王), 정미방(丁未方)은 관대(冠帶), 병오방(丙午方)은 임관(任官)에 해당되는 길방위이니 배산(背山)할 때는 이 방위를 선택해야 길하다는 이론인데, 인왕산은 경유방에 있는 장생으로서 장구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방위이지만 경복궁이 서 있는 곳은 절방(絶方)이어서 흉하다. 방계혈족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은 장손을 주관하는 좌청룡인 낙산이 극히 허약한 데 비해 방계쪽을 주관하는 우백호가 인왕산으로서 청룡에 비해 3배 이상 드높아 좌우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군포시의 풍수형국에 대해 도선비기(道詵泌記)에 의한 특수비법으로 길흉 판단을 해보기로 하자. 후천방위(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8쾌상의 방위)를 선천방위수로 바꾸어 입좌득파(좌를 중심으로 산과 물이 모여 드는 요소) 해당 방위수를 합한 다음 8로 나누어서 남은 수를 중궁도(낙서에 의한 후천 8방위 상의 중심이 되는 위치) 중심에 대입하여 다른 방위수가 변화하는 이치에 따라 산천의 길흉판단을 정하는 것이 도선국사의 특수풍수비술이다. 배산이 되는 내룡은 방겁(妨劫)과 호아(護我)와 복종(服從)으로서 역시 길격이 된다. 이러한 풍수형국에 사는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정의감이 강하며 부귀를 누리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순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에는 단결심이 남다르게 강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