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가족묘지는 과연 '제왕지지'인가?
경찰서장 출신 역학대가 이정암의 풍수 그리고 운명 이야기
이정암/풍수연구가 | 입력 : 2012/02/20 [14:51]
1997년 부모의 묘지 신안군 하의면에서 용인군 묘봉리로 이장 이 묘소가 발복해 DJ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믿는 사람들 많아
“풍수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입니다. 또 그 역사와 뿌리가 장구하고 경험적 과학의 산물이기에 백발백중, 천발천중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도선풍수 명리학회 이정암 회장은 전직 경찰간부 출신으로 수십년 동안 풍수경전을 익혔으며, 퇴임 후 본격적으로 관련 저술을 발간하는 등 풍수·명리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2005년 8월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한 그의 최종 계급은 경무관이다. 경찰에 몸담은 26년 중에 17년 넘게 수사분야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경찰 입문 전부터 배운 풍수·명리학을 적용해 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 경찰 내부에서는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퇴임 후에는 <풍수 그리고 운명> <범위명운수비결> 등 10여 권의 관련 저술을 발간,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자전적 개운 이야기를 <사건의 내막>에 연재한다. <편집자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이상 남겨놓은 1997년 1월20일, 나는 <천운(天運)>이란 책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사주를 요약하여 발표하려 했다. 그러자 당시 해당 출판사측에서는 언론에 보도된 13명의 유력 대통령 후보자 중에서 과연 누가 당선될 것인지를 언급해야만 책이 잘 팔릴 것이라며 강력한 주문을 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을 우려한 나는 <황국책수비해>에 의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것을 예언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5년간의 국운과 함께 '대권주자의 명운학'이라는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15대 대권 주인은 두령격 관상 “우주만물은 음약의 배합과 함께 강약의 조절이 조화 있게 짜여 있다. 그것이 진리인 탓에 국가의 흥망성쇠도 그러하였고 역대 대권주자 역시 그러하였으니 어찌 하늘의 조화가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게 되면 그 다음은 필연적으로 부드러운 지도자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뒤를 이을 대권주자는 아마도 부드럽고 융화가 넘치는 인물이 될 것이며, 필히 개방화 물결에 밀려오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의 기반을 다지면서 국민대화합을 이끌어 갈 부드럽고 화기에 찬 외유내강형의 힘 있는 지도자일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얼굴은 두령격이며 하관이 잘 발달된 포용력 있는 인물로서 명리학으로 보아 정축년(丁丑年)에 용신운(用神運)과 무인년(戊寅年)에 관성운이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다.” 그 당시는 누가 대통령에 출마할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더구나 당선 유력자가 누구인지는 더욱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IMF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의심한 바 없었던 때였으나 예언대로 국가경제위기인 IMF 사태가 왔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이끌어 내고 6·15선언을 함으로써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남북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일을 해낸 것이다. 그의 관상 또한 두령격(관상학에서 얼굴 모양이 크고 지도자격이 되는 모습)이고 보면 내 예언이 정확하게 적중한 것이다. 그리고 ‘제15대 대권의 행방은?’이라는 소항목에서 1998년에서부터 2001년까지 전개될 국운을 다음과 같이 예언한 바 있다. -1998년은 무인(戊寅)의 해로서 무토(戊土)와 인목(寅木)이 재(財)와 관(官)을 주도하게 되는데 관은 관성이므로 새 대통령이 취임하여 국력의 재결집과 어려운 경제안정에 힘쓸 것이다. -1999년은 기묘(己卯)의 해로서 기토(己土)와 묘목(卯木)이 재(財)와 인(印)을 주도하므로 경제안정과 국력 신장에 가일층 박차를 가하는 해가 될 것이다. -2000년은 경진(庚辰)의 해로서 금풍(金風)인 경금(庚金)이 크게 불고 진토(辰土)는 습재이니 무(武)와 재(財)로 인해 지구상에 놀랄 만한 일들이 전개될 것이고 국내에서도 큰 변화인 통일조성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진통과 함께 군권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01년은 신사(辛巳)의 해로서 신금(辛金)과 사화(巳火)가 금풍(金風)과 관성(官星)을 지배하니 국력의 소모와 함께 남북 간에 큰 정치적 변화가 예상된다. 제왕지지는 안온하면서 평탄한 땅 군권이 힘을 받는다는 것은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나 주도권 다툼이요, 국력의 소모는 북한을 지원하는 경제적 지원과 국론분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5년간 전개될 우리나라의 국운을 종합적으로 예단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1년쯤 앞둔 1997년에 부친과 모친의 묘를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서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묘봉리 산 156번지 상단에 이장(합장)하고 묘지 중단에는 전처, 하단에 여동생 등 가족묘소를 조성했기 때문에 이 묘소가 발복하여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 터를 잡아준 소위 ××도사라는 노인조차 그 터는 제왕이나 대통령이 날 수 있는 제왕지지(帝王之地)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요해도선비기(要解道詵泌記)>에서 밝히고 있는 제왕지지(帝王之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제왕지지의 내맥은 진룡(眞龍)으로서 내세(來勢)가 장원(長遠)하게 펼쳐지면서 4태(四胎)인 건(乾)·곤(坤)·간(艮)·손(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끊기지 않고 천병만마(千兵萬馬)가 하늘에서 내려오듯 하다가 혈(穴)을 지을 입수(入首)에 이르러서는 잘룩한 목처럼 봉만(峰蠻)을 특별히 일으키는 등 높직한 언덕 위에 위치한 상취혈(上聚穴)에 붙는 청령과 백호가 생겨나거나 달무리나 만월(滿月) 같은 훈(暈)이 생겨 생기(生氣)를 모으고 앞으로도 감싸돌고 뒤로도 웅위하여 훈(暈)이 두르고 좌로 공수(控手)하며 우로는 읍(揖)한다. 또 앞에는 날카로운 사격(砂格)이나 깊은 구렁이 보이지 않고 안온(安穩)하여 평탄하면서 가까운 근안(近安)은 낮고 멀리서 조응(朝應)하는 산은 첩첩으로 떼를 짓고 천리산천(千里山川)이 모두 정을 보내니 가까우면 수백 리요, 멀면 오륙백 리가 된다. -<요해도선비기> 중에서 - 과연 그 터가 제왕지지로서 묘를 쓰고 나서 1년 이내 대통령에 당선될 만큼 발복할 수 있는 대지인지 현장에서 차례로 검증해 보기로 하자. 좌우측에서 흐르는 청룡수와 백호수 약하고 급해 조화 잘 안돼 그 터는 제왕지지는 고사하고 질색명당…질병과 관재구설 우려 여인의 유방처럼 생긴 乳穴 제일 먼저 시조산(始租山)이 되는 시궁산(時宮山, 513미터)은 중후한 토성형(土星形)으로 성봉이 되어 서쪽과 남쪽으로 길게 이어져 맥을 드리우다가 묘봉(卯峰, 242.3미터)에 이르러 다시 중후한 토성으로 치솟은 가운데 용맥이 갑묘방(甲卯方)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간 지점에 작은 능선 하나가 사람의 가슴처럼 생긴 중심 부위로 조그마한 산봉우리(153.4미터) 하나가 임감방(壬坎方)으로 빠져 나왔으니 왼쪽에 있는 작은 능선과 함께 마치 여인의 유방처럼 생긴 유혈(乳穴)이다. 주봉은 공허하게 꺼져 있는 가운데 청룡에 해당하는 좌측 능선이 우측 백호까지 길게 둘러쳐져 마치 사람이 왼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껴안은 듯하다. 또한 중심이 되는 혈장의 좌우측 폭이 너무 좁은 것이 이 터의 큰 흠인데 유혈인 경우는 선익이 더욱 중요하다. 풍수학에서 선익(蟬翌)이란 매미의 양날개처럼 풍선같이 뭉쳐진 산천의 정기를 좌우에서 받쳐 안고 있어야 비로소 혈중 생기의 유실을 막을 수 있고 자손의 의(義)와 재운(財運)도 주관할 수 있다고 했다. 특기할 것은 간인방(艮寅方)에서 갑묘방(甲卯方)으로 흘러온 용맥이 다시 임감입수(壬坎入首)하여 정남향인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작혈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이기법상 좌선룡(佐旋龍)과 우선룡(右旋龍)이 혼합한 음양박잡이 되어 대흉하며, '60화갑자비결'에도 "갑묘룡(甲卯龍)에 임감입수(壬坎入首)는 병인(丙人)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명당 내 좌측에서 시작되는 작은 물줄기인 득수(得水)는 중심 혈장 앞을 지나 남서쪽인 곤신방향(坤申方向)에서 감추었으므로 이를 '목국계룡(木局癸龍)'이라 하는데. 입수처가 목국계룡인 경우 24길흉방위로 명당의 내룡을 분류해 보면 갑묘(甲卯) 방위가 곧 생룡(生龍)에 해당되는 셈이다. DJ 가족묘 ‘형옥의 화’ 우려되는 터 그러나 이 터는 목국계룡에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그 중심을 정했으므로 물을 감추는 파구(破口)가 곤신(坤申) 방위로 나 있어 '파재 또는 단명한다'고 하는 흉방위가 된다. 물형론(物形論)에 의해 다시 전체 형국을 살펴보아도 각종 귀사(貴砂)가 조안(粗安)하고 있거나 문무백관이 나열해 있는 상제봉조형(上帝奉朝形)이라면 군주(君主)가 재상(宰相)들에 둘러싸여 진언과 보호를 받으면서 국가를 다스리는 모습일 것이나 이 산은 그렇지가 않다. 더구나 좌우측에서 흐르는 청룡수와 백호수가 약하고 급해 조화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반사람들은 대통형의 가족 묘소이므로 당연히 ‘제왕지지’인 대길지에 터를 정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묘봉리는 무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로서 조산(粗山)인 산봉우리가 정동쪽인 진방(震方)에 있기에 이 마을 사람들이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군신안(君臣案) 등 특별한 길사(吉砂)가 없는 이 터는 제왕지지는 고사하고 질색명당으로서 남서쪽인 미방(未方)에 탐두사(探頭砂)가 있는 등 질병과 관재구설 등 형옥의 화가 우려되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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