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농약사이다' 사건의 전말

경찰, 농약 구입경로 파악못해... 유가족이 발견한 또 다른 병의 정체는?

이상호 기자 | 기사입력 2015/07/24 [14:57]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의 전말

경찰, 농약 구입경로 파악못해... 유가족이 발견한 또 다른 병의 정체는?
이상호 기자 | 입력 : 2015/07/24 [14:57]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리에서 지난 14일 ‘농약사이다’ 음독사건이 발생했다. 이곳은 주민 30%가 박씨 성을 가진 집성촌으로 42가구의 86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날 오후 2시 43분경 마을회관에서는 전날 마을잔치 때 마시고 남은 사이다를 마신 할머니 7명 중 6명이 거품을 토하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에 따르면 이 사이다에는 고독성 살충제가 들어있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15일 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던 81세 정모 할머니가 사망했고, 경찰은 17일 오전 농약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 할머니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 유력 용의자로 박 할머니 구속영장
경찰은 박 할머니 집 부근에서 살충제가 들어있는 드링크제가 발견된 점, 그리고 발견된 드링크제와 용의자 집안에 있던 같은 제품의 유효기간이 일치하는 점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한 사건발생 전날 박 할머니가 피해자들과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치다가 다투는 일이 있었던 점을 범행 원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박 할머니가 평소 다니는 길이 아닌 화투를 치다 다퉜던 할머니의 집쪽으로 돌아서 마을회관으로 간 점도 주목했다. 박 할머니가 피해 할머니의 위치와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경찰은 사건 당시 피해자 6명이 농약 사이다를 마시고 쓰러졌을 당시의 박 할머니 행적도 의심했다.
먼저 박 할머니는 피해자 중 한명이 구토를 하며 마을회관 밖으로 나왔는데, 이를 뒤따라 나온 정황이 포착됐다. 또한 잠시 후 119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당시 박 할머니는 마을회관 안에 쓰러진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계단에 앉아 있었다. 이는 구급차의 블랙박스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경찰이 가장 중요한 단서로 포착한 것은 박 할머니의 옷과 스쿠터 손잡이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점이다. 당시 국과수 결과 발표 이후 박 할머니와 가족들은 “피해자들이 내뱉은 거품과 토사물을 닦아주다가 묻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토사물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토사물을 닦아주다가 묻은 것이 아니라 음료수에 살충제를 타다가 묻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박 할머니가 체포된 다음날에는 89세 라모 할머니가 사망함으로써 이 사건의 사망자가 2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20일 법원은 박 할머니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제 3의 인물 등장?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 보인 ‘농약사이다’ 사건은 22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경찰이 사건 발생 이후 박 할머니의 집을 압수수색 할 당시 발견되지 않은 살충제 병이 또 발견된 것이다. 이 살충제 병은 범행에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박 할머니의 아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살충제 병은 경찰이 집을 압수수색을 할 당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당시 박 할머니를 제외한 제3의 인물이 이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상주경찰서 이규봉 수사과장은 이날 “경찰이 압수수색할 당시 이 병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현재 누가 병을 가져다 놓았는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 몇시간 뒤 경찰은 “압수수색 이후에 누군가가 두고 간 것으로 생각했으나 다시 조사하니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너무 낡았고 사람의 손이 별로 닿은 흔적이 없어서 그 당시에 증거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처음 발표를 번복한다.
압수수색에서 발견하지 못한 농약병이 추가로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박씨 가족은 “농사를 지은 지 오래됐기 때문에 집에 농약을 두지 않았다”며 “집에서 농약이 든 드링크제 병이나 농약병 등이 발견된 것은 처음부터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누명을 씌우려고 한 짓이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박 할머니 그럴 사람 아니다”
지금까지 박 할머니 집 근처 3곳에서 농약이 발견됐다. 박 할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농사를 짓지 않은 지 오래돼 집에 농약을 두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역시 이들 농약의 구입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50년 넘게 가족처럼 지낸 이웃들을 해칠 만한 ‘명확한’ 동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화투 놀이를 하다 다툼이 있었고, 농지 임대료와 관련한 갈등도 있었다고 하지만 가족들은 부인하고 있다.
박 할머니 가족 “피해자 중 깨어난 사람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면서 “10원짜리 화투로 싸워봤자 얼마나 싸우겠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농약사이다’를 마신 뒤 의식을 회복한 신 할머니(65세) 역시 “(사이다에 독극물을) 탔다고 믿기 어렵다”면서 “그럴 이유도 없고, 독극물 범죄를 저질러 놓고 평생 같이 지내온 친구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태연히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그렇게 독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 23일 마을 주민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피의자 박 모 씨 할머니를 기소의견으로 늦어도 오는 27일까지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 측에 따르면 범행동기, 범행 시점, 농약 구입시기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확인한 증거로도 기소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피의자 할머니 아들과 딸 부부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뽑아 사건 발생 직후 피의자 할머니와 자녀가 사건 처리에 대한 내용을 협의한 일이 있는지 등을 살필 예정이다. 평온했던 이 마을은 사건이 발생한 후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동네 주민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고, 일부는 자녀들이 사는 외지로 거쳐를 옮긴 상태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미스터리에 싸인 상황에서 경찰 수사에 대한 신뢰마저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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