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크 저커버그(Mark E. Zuckerberg, 1984~)는 2003년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며 페이스매시(Facemash)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페이스북의 시초다. <사진=저커버그 공식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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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명이 뒤를 봐주는 SNS계의 큰형님…‘좋아요’
하버드 학생들만 사용… 이용자 수 세계 1위로 성장
페이스북(facebook)은 사진, 동영상(UCC), 짧은 글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빠르고 쉽게 전달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한 종류다. SNS에서 최고자리를 고수 중인 페이스북은 2015년 2분기 기준 전 세계 14억 9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인구인 30억 명의 절반가량이 사용한다는 뜻이다.
지난 2003년 10월 28일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Mark E. Zuckerberg, 1984~)는 2학년 때 페이스매시(Facemash)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페이스북의 시초다. 그 뒤 2004년 2월 4일에 “더페이스북”(TheFaceBook)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 6월에는 캘리포니아 주의 팔로알토로 회사를 옮기며 페이팔 공동 창립자 피터 디엘로부터 첫 투자를 받았다. 그 뒤 facebook.com 도메인 이름을 2005년에 20만 달러를 주고 구매한 뒤 이름에서 ‘The’를 빼고 지금의 “페이스북”으로 자리 잡았다.
페이스북은 처음에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 아이비리그 대학생들까지 회원가입을 허용해가며 점차 영역을 넓혔다. 미국과 캐나다의 대부분 대학교로 서비스를 확대한 페이스북은 2005년 9월에는 고등학생까지 가입하게 했다.
2005년 말까지 2,000개 이상의 대학과 25,000개 이상 고등학교의 네트워크가 생성됐다. 그 이후로는 몇몇 기업에까지 회원 영역을 넓혔으며, 마침내 2006년 9월에는 13살 이상의 전자 우편 주소를 가진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됐다.
2006년에 페이스북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자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에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벤처 캐피털로부터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정보화시대 영향력 1위 저커버그
페이스북 개발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회사의 CEO로서 차세대 디지털 거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지난 1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6년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따르면 저커버그는 매년 순위를 올려 6위로 발표됐다.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주의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과,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였다.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로부터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집 근처 머시 칼리지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그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 2010〉에서는 프로그래밍밖에 모르는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실제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그는 서양고전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3학년 때 학교를 옮긴 뒤에도 과학과 서양고전 연구 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펜싱도 즐겨 펜싱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synapse media player)’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이것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용자의 음악 감상 습관을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음악 플레이어였다. 이를 본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고 저커버그를 고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컴퓨터 과학과 심리학을 전공할 생각으로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교 진학 후 만든 페이스북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세계적인 인물이 된 그는 이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10년 잡지 <배니티 페어>는 저커버그를 ‘정보화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했다. 같은 해 그는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커버그는 2010년 미국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적록 색맹’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세상이 모두 파랗게 보인다”면서 “푸른색은 나에게 가장 많은 색깔”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페이스북은 모든 화면을 파란색으로 채우고 있다.
그는 매년 새로운 목표를 세워 도전한다. 2011년에는 ‘채식 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어떻게 키워지고 도살되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며 책임 있는 식사를 강조한다.
| ▲ 지난 3월 18일에 저커버그가 짙은 스모그에 뒤덮인 베이징 톈안먼 광장 앞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조깅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중국에 친밀한 이미지를 심어 시장진출을 노리고 있다. <사진=저커버그 공식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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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저커버그, 괴짜 천재·채식주의자·팬싱팀 주장
SNS 활용한 사업영역 확장, 새로운 뉴스플랫폼 제시
지난 3월 18일에는 저커버그가 짙은 스모그에 뒤덮인 베이징 톈안먼 광장 앞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조깅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날 오전 베이징의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의 무려 15배에 달하는 수치가 나와 스모그 황색경보(3급)가 발령된 상태였다.
저커버그가 중국을 방문하고 ‘스모그조깅’까지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페이스북이 차단된 있는 중국에 친밀한 이미지를 심어 시장진출을 노리고 있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6억 8826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의 약 5분의 1가량이다.
중국진출을 위한 노력은 예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었다. 중국계 미국인 프리실라 챈과 결혼한 저커버그는 아내와 연애하던 2010년부터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칭화대에서 중국어로 20여 분간 강연도 했다. 지난달에는 중국의 명절 춘절을 맞아 페이스북에 중국어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하루 뒤 19일 저커버그는 류윈산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공식적인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를 보고 지역 신문은 이번 만남이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 페이스북 서비스 허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류윈산은 중국 권력서열 5위로 언론·인터넷·출판 분야를 담당하는 핵심인물이다. 한편, 중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외국계 소셜미디어와 주요 웹사이트들을 차단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 웹사이트를 차단하는데, 페이스북은 중국, 베트남, 이란,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시리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간헐적으로 차단된다. 이들은 종교, 정치, 유해성 등의 이유로 서비스를 금지한다.
곳곳에 손을 뻗은 페이스북
중국에 진출하지 않고도 페이스북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이미 최고 수준이다. 광고회사로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많은 고객 수를 등에 업고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려 한다.
2015년도 4분기에 벌어들인 매출액은 무려 58억 달러에 달한다. 전년동기대비 무려 50% 상승한 수치이다. 대부분의 매출은 광고수익에서 나왔다. 50%가 성장하는 것은 우량기업이여도 보기 드문 케이스다. 페이스북의 한계가 아직 멀었다는 증거이다.
2015년 발표된 세계브랜드가치에서 23위에 오른 페이스북은 가장 브랜드 가치 상승 폭이 큰 기업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 시가총액 3,000억 달러 선을 밟은 페이스북은 기업 공개 후 불과 3년 6개월 만에 10위권에 입성하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줬다.
광고계의 부동의 1위인 구글을 뒤 쫓는 페이스북은 점차 다양한 사업영역을 확대한다. VR(가상현실)에 관한 관심에 불을 지핀 ‘오큘러스’ 인수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통해 VR 사용자들이 온라인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고 동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소셜 플랫폼을 만들었다.
최근 페이스북은 차량 공유 애플리케이션(앱) ‘우버’와도 손을 잡았다. 두 회사는 미국 내 10개 도시에서 콜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메신저를 통해 우버를 부를 수 있게 한 것으로 다른 앱 설치가 필요하지 않아 모든 과정을 메신저 안에서 진행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힘은 정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가 그 힘을 이용해 당선됐기 때문이다. 당시 오바마와 공화당 존 매케인의 페이스북 친구 수는 큰 차이가 났다. 오바마는 이미 SNS를 활용한 홍보에 적극적이었기에 선거 2달 전부터 170만 명이 넘는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매케인은 30만 명 정도였고, 선거가 끝난 후 60만 명으로 늘리는 것에 그쳤다. 이는 2배가 증가한 것이지만, 오바마가 취임식을 할 때 450만 명이 된 것에 비교하면 현저히 작은 수치다.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인들도 페이스북을 홍보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길거리에서 많은 후보들이 명함을 내밀고 다닌다. 예전엔 대부분 명함에 전화와 이메일 주소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SNS 계정이 꼭 적혀있다. 정치계에서 SNS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았다.
페이스북이 정치에서 파급효과가 좋은 점은 비슷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유대관계에 있다. 페이스북의 큰 특징은 ‘친구 맺기’를 통해 서로 유대감이 높은 사람들끼리 뭉친다는 것. 친구로 맺어진 사람들은 평소에도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주기 어렵다. 덕분에 한 명이 ‘좋아요’를 한 글은 쉽게 주변 사람한데 퍼지며 여론을 형성한다.
페이스북은 긍정적인 의미인 ‘좋아요’만 있고 부정적인 표현은 따로 댓글을 달아야 한다. 더욱이 댓글을 다는 것은 ‘좋아요’를 한번 클릭하는 것보다 부담감이 더 큰 행동이다.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노출되어야 하고, 반대 의견이라면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 원하는 정책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의미로 ‘좋아요’를 누른다. 자신과 반대 부류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좋아요’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이처럼 ‘좋아요’가 쌓인 글은 더 큰 파급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친구수가 많은 정치인이 더욱 큰 여론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가 대선 당시 많은 친구 수를 이용해 승리했다는 분석도 같은 이유로 해석한다.
페이스북은 정치인의 기자회견장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페이스북에서 상대진영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펼친다. 이러한 글은 여론에 바로 노출이 되고, 언론은 이 글을 인용해 뉴스를 만든다.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기자회견을 열 수 있다.
페이스북이 또 하나의 작품을 구상 중이다. 오는 4월 12일 미국에서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될 ‘인스턴트 아티클’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인스턴트 아티클’은 페이스북에서 인링크 방식 뉴스서비스로 언론사의 뉴스를 새 창을 띄우지 않고 보는 장점이 있다. 이는 기존 인터넷 뉴스가진 언론사를 접속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로딩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편리한 접근성을 무기로 많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인스턴트 아티클’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서비스를 미국에서 350여 개의 언론업체가, 아시아는 우리나라 SBS를 포함하여 약 50여 개의 언론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시범 운영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작년 6월 온라인 타운홀 미팅에서 “‘인스턴트 아티클’은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주요 경로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이 시범운영 되었던 미국 언론사 <뉴욕타임지>에서 긍정적인 사례가 나왔다. 소셜 콘텐츠 전문 분석업체 윕(NEWSWHIP)의 통계에 따르면, ‘인스턴트 아티클’로 발행된 뉴스는 그렇지 않은 뉴스에 비해 3배 정도 더 많은 공유를 했다. ‘좋아요’나 댓글 수도 늘어났다. 자세한 수치는 공유 수 3.5배, ‘좋아요’ 수 2.5배, 댓글 수 5.5배 등 모두 2배 이상이었다.
정식 서비스를 하기도 전에 섣부른 판단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사용자를 보유한 SNS에서 획기적인 뉴스 플랫폼을 제시했으니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페이스북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뉴스 서비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