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 사건은 관심병사의 관리 부재와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병영문화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일탈 경위와 사건의 인과관계도 밝혀야 하지만,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시정하지 않고는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사건의내막>은 군대에서 총기사건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31세 김모씨는 군 생활 중 총기사고의 피해자였다. 가혹행위를 겪고 있었던 후임(이등병)이 경계근무 뒤 복귀하는 과정에서 K2 소총을 발사, 김씨는 팔에 부상을 입었고, 이등병과 함께 경계근무를 섰던 상병 박모씨는 사망했다.
“군대에는 경계근무라는게 있다. 보통 경계근무는 2인이 한 조를 이뤄 근무를 한다. 경계근무 자체는 2명이 서지만 나갈때와 복귀할 때는 이를 인솔하는 선임병사도 뒤따른다. 내가 병장때 이 인솔 선임병사의 역할을 맡았다. 근무는 상병과 이등병이 한 조를 이뤄 1시간 가량 경계근무를 섰다. 복귀를 마치고 실탄을 반납하는 과정에서 이등병이 뒤에서 총을 발사했다. 그 자리에서 박 상병은 쓰러졌고, 나는 팔에 총을 맞고 내무반으로 달아났다. 전역 4개월을 남긴 시점이었다”
총기 사건이 발생한 후 군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총을 쏜 이등병은 실탄을 가지고 함께 도주했고, 부대는 무려 12시간 가까이 그를 추적했다.
총을 쏜 이등병의 위치가 어느정도 파악되자 당시 군은 그의 어머님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임병장 사건과 마찬가지로, 방송을 통해 “투항을 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방송이 어느정도 나간 뒤 두발의 총성이 들렸다. 이 이등병은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당시 김씨와 함께 군생활을 했던 이모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전 12시 40분 경, 사건 발생 접수를 받았다. 그리고 몇시간 뒤 우리는 수색작업을 펼쳤다. 생포를 하라는 지시였다. 문제는 도망간 이등병은 실탄이나 무기가 있었던 반면, 수색을 하는 우리는 전혀 실탄을 소지하지 않았다. 그저 빈 소총을 들고 수색을 해야했다. 몇시간이 지난 뒤 다른 부대에서 지원이 나온 후에야 이 수색작업은 끝이났다.
이씨는 총기사건 이후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 죽었고, 두명이 부상을 당했다. 우리 부대는 그 뒤로 철저하게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생활하던 내부반도 마찬가지였다. 사망한 박 상병의 장례절차가 끝난 뒤 우리 내부반원들은 하나하나 면담조사를 받았다. 가해자인 이등병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도 이 면담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 내부반에서는 사망한 박 상병이 이 이등병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어떤 가혹행위가 있었을까?
훈련소를 거쳐 자대를 배치받게 된 병사들은 기본적인 자대의 생활수칙을 배우게 된다. 여기에는 군가, 복무수칙과 같은 암기를 해야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는 보통 이등병의 바로 윗 선임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이등병 등이 이 같은 부분을 하지 못하면 이른바 ‘내리갈굼’이 시작되는 것이다.
“당시 우리부대 내에서는 일병이나 상병급에게 있어 이 부분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병장들은 ‘장난삼아’ 이등병에게 암기 같은 것을 묻곤했다. 그리고 이등병이 암기하지 못하면 이는 모두 바로 윗 선임의 잘못으로 돌아왔다. 결국 사망한 박 상병도 이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등병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마음이 엇나간 것일 수도 있다. 이등병은 이를 참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 사건이 바로 지난 2006년 8월 10일 가평 모 부대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이다.
이 사건이 있기 전인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 503 GP에서는 김모 일병이 동료들이 잠자던 내무실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K-1 소총을 발사해 GP장 김모 중위 등 8명이 죽고 4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극이 발생했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지역으로 언제 어느 때 적이 도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높은 곳에서 아군 병사에 의해 병사들이 사망해 충격을 줬다. 당시 김 일병은 다음 근무자를 깨운다며 내무실로 들어온 뒤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곤히 잠들어 있던 동료들을 향해 총을 무차별 발사했다. 또 총격을 피해 도피하는 병사를 조준 사격해 살해하는 등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내 충격을 줬다. 군 당국은 김 일병이 선임병들로부터 질책과 폭언, 심한 인격모욕을 당한 데 양심을 품고 1주일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군은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군 복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특별 관리해 근무를 원활히 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관심병사’제도를 도입했다. 병사들은 신병교육대 전입 직후와 일병·병장 진급 시 등 세 차례 인성검사를 받는다. 여기서 군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A(특별관리)·B(중점관리)·C(기본관리) 등급의 관심병사로 결정된다.
“누구나 아는 관심병사”
이씨는 총기사건 이후 변화된 군에 대해 “달라진 것은 눈치를 보는 간부들”이라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신병이 자대에 배치되면 이른바 ‘관심병사’를 모를 수 없는 구조가 됐다. 더 문제인 것은 이들 ‘관심병사’에 대한 ‘보호’는 없었다. 단지 ‘은따(은근한 따돌림)’만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근무했던 부대는 포병부대였다. 아침 점오가 시작된 후 하루 일과를 하는 인원을 나눈다. 그때 보통 관심병사들은 일과 중 ‘작업’에만 배치된다. 당시 우리부대 내 작업이라는 게 보통 이등병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관심병사들은 포병일과에서 거의 계급에 상관없이 배제되었다. 그리고 훈련을 하더라도 직책 교육에 뒤쳐진 관심병사에게는 중요직책을 주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들은 2년 내내 ‘삽질’만 하다가 전역을 하게 된다”
“군대 내에서 아예 문제를 일으킬 만한 소지자 있는 자들을 이렇게 채 거르듯 걸러냈다”고 덧붙인 그는 “더 문제는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총기사건 이후 후임들을 괴롭히는 선임들과 간부들을 찾기 위해 ‘마음의 편지’와 같은 소원수리를 작성케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소원수리를 곧이 곧대로 쓰지 않는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으면, 수양록(군인이 쓰는 일기장)에 적힌 필체와 비교해 당사자를 찾아낸다. 그리고 당사자에게 찾아가 이런저런 말로 사과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 과정은 고스란히 부대 내에서 노출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솔직한’ 후임병은 ‘은따’, ‘관심사병’이 되곤 했던 것이다.
이씨는 이에 대해 “군 시스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은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폐쇄적인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은밀한 유대감이 형성되고 여기에 끼지 못하면 힘든 군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실제 군대 내 새로운 장교들 역시 훈련상황이나 내부반 생활에서 초반 힘든 생활을 한다. 병장보다 ‘이곳’ 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전역한 후 군대가 많은 변화를 해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물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개개인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병사간 상호 존댓말을 사용하게 하는 것들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무엇보다 군 사건은 관심병사 개인의 우연적 일탈로만 문
심 의원은 또한 관심사병으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군의 허술한 관리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들 관심사병은 비전문가인 지휘관의 관리통제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을 뿐, 전문가들의 상담과 치유의 과정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문제 사병관리에 있어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 제도가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도 23일 성명에서 “군 당국은 이번 경우를 예전의 사고처럼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군사고 또한 개인의 조직부적응으로만 이해한다면 다음에 우리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한국은 징병제 국가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군복무를 수행한다. 군문화 특유의 획일성과 통일성으로 인해 다양한 가치는 사라지고 상명하복식의 군문화만이 남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사회와 집단에서는 문화와 관습에 적응하지 못 하는 구성원을 적응시키기 위한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군은 이 의무를 소홀히 하고 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만 치부해서 문제를 축소화 시켰기 때문에 이런식의 총기사고가 반복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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