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무도한 조선시대 형벌들 ‘집중탐구’
“네 죄를 네가 알렷다”…곤장서부터 능지처참까지
이동림 기자
| 입력 : 2016/01/16 [20:45]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 등 ‘오형 제도’로 분류
강간범들, 장형 100대와 함께 3천리 밖으로 유배
| ▲ <사진=KBS2 '공주의 남자' 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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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관료·백성들 처벌위해 잔인한 형벌들 자행
싱가포르·이란 등지에서도 회초리 등으로 형 집행
[사건의내막=이동림 기자]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아이고, 사또. 쇤네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조선 시대에는 어떤 벌을 받았을까? 조선시대에는 죄에 따라 형벌은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으로 다섯 가지 형벌을 기본으로 했다.
조선 시대 형벌들
태형은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질렀을 때 죄수를 형대에 묶고 하의를 내려 엉덩이를 노출시킨 다음 엉덩이를 한 대씩 때리면서 세는 형벌이다. 장형은 태형보다 중한 벌로서 큰 회초리로 볼기를 때리는 것이다. 보통 ‘곤장형’이라 하면 으레 볼기를 맞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곤형은 볼기를 치는 태형이나 장형과 달리 볼기와 넓적다리를 나누어 치게 되어 있다. 곤장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통 군법을 집행하거나 도적을 다스릴 때 한해 쓰는 형벌이며 장형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다.
곤은 가볍고 탄력성 있는 버드나무로 만드는데 그 너비와 두께의 정도에 따라 소곤, 중곤, 대곤과 대역죄인을 다스리는 중곤, 도적을 다스리는 치도곤이 있다. 특히 치도곤은 곤 중에서 가장 두터워 ‘치도곤을 안긴다’는 말(심한 벌을 준다는 뜻)이 유래될 정도다. 한말 외국인들의 견문기에 ‘곤형을 받은 사람들은 불과 몇 대에 피가 맺히고 10여 대에 이르자 살점이 묻어나고 급기야 수형자가 기절하더라’고 서술되어 있다.
도형은 오늘날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도형 기간 동안 관아에 구금해 두고 일정한 노역에 종사시키는 자유형의 일종이다. 유형은 큰 죄를 지은 자를 사형하지 않고 외딴 시골이나 섬 등 먼 곳으로 쫓아내 일정 기간 동안 제한된 장소에서만 살게 하는 벌로 이른 바 ‘귀양’이라고도 한다. 이 제도는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제도다. 조선 시대에 유형은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유배지까지 거리가 2000리, 2500리, 3000리의 세 등급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한양에서 남쪽 끝까지 해 봐야 기껏 1000리도 되지 않는 좁은 땅이라, 빙빙 돌고 돌아 정해진 거리를 채우고 유배지로 가기도 했다.
제주도, 거제도, 흑산도는 조선의 3대 유배지였다. 그 가운데 한양에서 가장 먼 제주도는 기후 변화가 심하고, 물자를 얻기도 어려워 사람이 살기 힘든 곳. 운이 좋으면 풀려나기도 했지만 죽지 않는 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망망대해 외로운 섬은 악몽 같은 곳이었다. 반란 같은 큰 죄를 지어 유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정치적 음모에 희생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기도 했다. 언젠가 왕이 다시 부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떠나지만 유배지로 가다 병을 얻어 죽기도 하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조선 시대에는 김만중, 윤선도, 정약용, 김정희, 허균 등과 같은 많은 선비와 예술가들이 유배를 가야 했다. 또 벼슬아치만 유배를 당했던 것은 아니다. 유배는 왕족을 비롯해 평민, 천민에게도 내려졌던 형벌이다. 단종, 연산군, 광해군도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뒤 각각 영월, 강화도,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다. 사형은 형벌 중 극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대명률의 규정에 의해 교형과 참형 2종으로 정했는데 교형은 신체를 온전한 상태로 두고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며 참형은 신체에서 머리를 잘라 죽이거나 사지를 천천히 끊어내는 능지처참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명률’을 따라 성 범죄자들에게 엄격했는데, 성인 여성이든 어린 소녀든 강간한 사람은 무조건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태조실록에는 “11살 어린 아이를 강간한 사노 잉읍금을 교수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있다. 강간 미수범은 장형 100대와 함께 3000리 밖으로 유배시켰다. 장형은 긴 막대기로 볼기를 치는 형벌로 성인 남성도 10대를 견디기 힘들어 100대를 맞을 경우 거의 목숨을 보전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기녀라도 동의가 없을 경우 강간으로 처벌하였으며, 피해 여성이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는 형량에 참작 사항이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피해 여성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여성의 정장방위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자자형은 기본 오형(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이외에 덧붙여 가해지는 부가형 중 하나로 정형인 장형이나 유형에 부수되는 형벌이다. 묵형이라고도 하는 자자형은 죄인의 몸에 죄명을 새겨넣는 벌인데, 얼굴 혹은 팔뚝에 바늘자국을 내고 먹물을 들여 문신을 남겼다. 자자형은 평생 전과자 낙인을 찍고 살아야 하는 가혹한 처벌이었기에 그 시행에 신중을 가했고, 영조 16년에 완전히 폐지됐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는 형벌이 단계별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고, 형벌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철저한 원칙을 두었다. 백성이 억울하게 벌을 받으면 관청에 사정을 이야기하여 풀어 달라고 할 수 있었으며,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은 반드시 본인에게 판결문을 내리고 진실을 밝혀서 백성들을 함부로 처벌하지 못하도록 했다. 관리들의 법 집행이 공정한가를 감시하기 위해 암행어사를 보내기도 했다. 수령은 가벼운 죄에 대해 매질하는 태형만을 집행할 수 있었고, 그 이상은 관찰사의 지시를 받아야 했습. 사형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 나라에서 심사와 토의 과정을 거쳐 왕이 직접 결정했다고 한다.
이웃 나라 중국에도 오형이 있었다. 고전에 따르면 사형·궁형·월형·의형·경형 등 다섯 가지가 그것. 죄인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형벌이다. 형벌 내용을 살펴보면 월형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것, 의형은 코를 베는 것, 경형은 얼굴·팔뚝 등의 살을 따고 홈을 내어 죄명을 찍어넣는 것으로 형벌의 잔혹함 때문에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명나라 때 기본 법전인 대명률에도 오형은 사형·유형·도형·장형·태형으로 나눠져 있다. 이 오형 가운데 사형 다음의 극형으로 돼 있는 것이 궁형이다. 궁형은 남녀의 생식기에 가하는 형벌로, 남자건 여자건 거세해 자손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의 왕궁에서는 예로부터 이 궁형에 처한 남자를 후궁에서 사용했는데 이를 환관이라 했다. 궁형에 처해졌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 기원전 99년 그의 나이 48세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을 받았다. 애초에 한 무제로부터 받은 형벌은 사형이었다. 당시 사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돈 50만 냥을 내고 감형받는 것과, 궁형을 받아 환관이 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궁형을 택했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다 기원전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해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었다. 중서령은 황제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었다. 하지만 환관 신분이었던 탓에 일부 사대부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야 했고 운신의 폭 또한 넓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의 신체를 직접 때리거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고통을 주는 신체형은 과거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요즘엔 신체형이 거의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많은 나라에 남아 있다. 재밌는 것은 영국에선 정작 태형이 공식적인 형벌로 사용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영국 식민지에선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다. 영국 식민지 시절 도입된 태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걸로 유명하다. 싱가포르에선 곤장 같은 막대기가 아니라 등나무 회초리로 태형을 집행한다. 성폭행, 강도, 불법무기소지 등 40개 흉악범죄를 저지른 16~50세 남성을 대상으로 3~24대까지 때린다. 맞다가 상처가 심하면 병원 치료를 받게 하고, 상처가 아물면 나머지 매를 다시 집행하는 식이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1994년 한 미국 청년이 주차된 차를 손상했다가 태형 네 대에 처해진 유명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와 언론의 압력에도 불구, 싱가포르 정부는 꿋꿋이 태형을 집행했다. 최근에는 사람 대신 기계가 태형을 집행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 아직까지 태형이 남아 있는 것은 유별난 이 나라의 법집행 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교적 이유도 있다. 싱가포르 인구의 약 20%가 이슬람 신자인데, 이슬람 율법 ‘샤리아’엔 신체형을 허용하고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이슬람권인 중동의 많은 국가와 일부 아프리카 국가, 말레이시아 아체 주 등에서도 여전히 태형이 집행된다.
예외가 아닌 외국인
예컨대 이성과 악수를 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남녀 시인 2명은 각각 99대의 태형을 선고한 이란 사법당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스웨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악수했는데 이란에서는 친족 이외 이성과의 악수를 부적절한 성적 행위로 본다는 것.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집에서 와인을 빚은 한 70대 영국 남성에게 공개 태형 350대를 선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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