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 “코로나 19의 ‘마스크’ 너는 누구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바이러스를 온 몸으로 막아낸다고 알려진 그대 마스크에게

박연파 기자 | 기사입력 2020/03/02 [18:02]

김대유, “코로나 19의 ‘마스크’ 너는 누구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바이러스를 온 몸으로 막아낸다고 알려진 그대 마스크에게

박연파 기자 | 입력 : 2020/03/02 [18:02]

 

▲ 김대유(경기대 초빙교수, 한중교류촉진위원회 공동대표)  © 사건의내막



[사건의내막 / 박연파 기자] = 김대유(경기대 초빙교수, 한중교류촉진위원회 공동대표)는 마스크는 올려 쓰면 마술이 된다.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마스크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부조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준기가 열연한 왕의 남자에서 왕과 양반들의 구태를 꼬집은 탈 가면은 조선사회의 패러독스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런던탑에 갇힌 철가면은 권력투쟁의 상징이고, 프랑스 궁정의 가면무도회는 쾌락의 정치화다. 마스크는 가면이고 탈이며 내 얼굴의 다른 얼굴이다. 코로나 19의 마스크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바이러스를 온 몸으로 막아낸다고 알려진 그대 마스크에게 나는 묻고 싶다. 너는 누구냐?

 
첫째, 마스크는 민중의 눈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를 믿지 않기 시작한 민중은 처음부터 정부의 지침을 믿지 않았고 지킬 마음도 없었다. 코로나19(이하 코로나)가 한국땅에 상륙한 초기에 정부는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숨죽이던 백성은 정부를 믿지 않고 ‘무조건 모두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착용했다. 백성의 뜻(?)을 읽은 모든 공공기관은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알림방송에서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란 지침을 빼고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나발을 불었다. 백주 대낮에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둘째, 마스크는 대한민국을 좀비국가로 각인시켰다. 신천지 사태가 나기 일주일 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네덜란드를 필두로 한국인 출입금지의 혐오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이 매우 성실하고 사망자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고, 한국의 방송에 나타난 광화문 거리를 비롯한 모든 거리에 마스크를 쓴 국민의 모습에만 시선이 꽂혔다. 마스크는 비감염자를 제외하고 확진자 환자만 쓰는 문화를 갖고 있는 그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글자 그대로 좀비의 공포가 지배하는 위험한 나라일 뿐이었다.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본조차 직장에서 마스크를 쓰지 길거리에서 쓰지는 않는다.

 
셋째, 마스크는 관료주의의 산물이다. 청와대와 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대응은 단 하나뿐이었다. 마스크를 쓰자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마스크를 써야만 된다는 교육과 지침없이 무조건 마스크부터 들고나온 그들의 속내는 간단하다, 감염자를 색출하여 차단하면 된다는 일제(日帝)의 감염병 관행 대책을 가감 없이 계승하였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감염병 대책의 수립과 시행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든 공공기관의 대책은 마스크 착용 지침뿐이었고, 심지어  어느 교육청은 학교현장의 보건교사에게 예방보건수업은 중단하고 방역만 하라고 종용하였다.
 
 
넷째, 마스크는 환자를 죄악시하고 분리하며 바이러스 취급을 하게 만들었다. 페스트 등 감염병 비극을 수없이 맞이했던 유럽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종합대책이 발달하였다. 마스크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쓰여졌고,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상생활에 집중하도록 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 공장이 멈추고 동료 간에 신뢰가 사라지게 되며, 그 여파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섯째, 마스크는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국민을 멸절로 이끈다. 동선 확인 등으로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대화와 만남을 금지하며, 모든 국민이 상대방을 감염자가 아닌가 ‘서로 의심’하게 만들어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조장한 ‘국민 마스크 씌우기 정책’은 국내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국제적으로 절대고립을 자초하였다. 이대로 두달만 가면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은 10년 뒤로 후퇴하고,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국민은 거지가 될 것이며, 바이러스가 저절로 소멸된 어느 봄날에 잿더미에 앉아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마스크 논쟁의 정점에서 우리는 선진국들의 대책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고, 더 늦기 전에 다음과 같은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기를 바란다.
 
 
첫째, 마스크를 벗어라. 밀집된 실내공간이나 감염의 가능성이 높은 곳을 제외한 모든 길거리, 트인 공간, 안전한 지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장관, 시도의 단체장들부터 마스크를 벗어라. 안전한 곳에서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리고 발언하는 모습은 불편하다. 스스로 바이러스에 걸려도 우수한 한국 의료진의 치료로 금방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감염병의 확진자만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상식을 심어주어라. 트럼프, 아베, 마크롱, 푸틴이 마스크를 썼더냐?
 

둘째,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사회경제 시스템에 복귀하여 정상생활을 하도록 당장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학교는 개강을 하고 공장과 회사는 가동을 하고 배고픈 사람은 식당에 가야하며 불금에 술집은 성황을 이루어야 한다. 지역사회 감염의 벽이 뚫린 지금, 색출과 봉쇄로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소가 웃을 일이다.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감염자를 돌보려면 사회경제 시스템이 정상화되어야 가능하다. 전쟁에서 병참은 전투보다 중요하다. 한고조 유방이 막강한 항우에게 승리를 거둔 것은 병참을 조달한 소하 덕분이고, 이순신이 길고 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배경에는 둔전제의 운용이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
 

셋째, 마스크는 아픈사람, 확진자와 의료진에게 주로 쓰게 하자. 우리 정부도 무증상 감염자를 확진자 집계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가. 신천지에 갇혀서 영영 신천지를 보지 못하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그리고 한국발 입국자를 거부하고 격리하는 나라에게는 우리도 그렇게 하자. 나라가 나라답고 국민이 국민다운 한국에서 살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나는 좀비이고 싶지 않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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