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홈런 못 쳤다면… ‘일베’ 탄생 비화

임대현 기자 | 기사입력 2016/04/08 [15:25]

기아, 홈런 못 쳤다면… ‘일베’ 탄생 비화

임대현 기자 | 입력 : 2016/04/08 [15:25]
▲ 일간베스트는 유저들의 소통과 유머 등 재미를 위한 공간이라 주장하지만,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여성혐오성 발언과 광주를 비롯한 호남권에 대한 비난 등을 만들어 문제를 일삼는다.  <사진=일간베스트  홈페이지 캡처>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에서 시작한 반 진보세력

2009 우승한 기아타이거즈 비난에서 시작된 광주 비하

‘애국보수’ 표방하지만, 하는 짓은 사회 속 골칫덩어리

 

미디어와 언론에서 일베에 대해 알아보는 콘텐츠가 많았다. 심지어 일베에 관한 서적도 나왔지만 모두 그 시초를 상세히 기술하지 않았다. 많은 문제를 낳고 있지만, 정작 그 탄생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베에 대해 알아본다.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홈페이지는 유머사이트이지만, 정치적으로 신흥 우익세력을 자청한다. 일베는 유저들의 소통과 유머 등 재미를 위한 공간이라 주장하지만,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여성혐오성 발언과 광주를 비롯한 호남권에 대한 비난 등을 만들어 문제를 일삼는다.

 

장면1

일베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리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란 사이트의 몇몇 사건을 알아야 한다. 디시는 김유식 대표가 지난 1999년도에 설립한 오래된 인터넷 커뮤니티다. 이곳의 특징은 테마별로 나눈 갤러리란 게시판에 유저들이 자유롭게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베는 디시에서 파생된 사이트다.

 

일베가 탄생하기 전 디시 내에서 일어났던 ‘전여옥과 정사갤의 토론회’는 현재 정치성향이 나타난 사건 중에 하나다. 지난 2004년에 디시의 정치·사회 갤러리(이하 정사갤)는 그 당시 인터넷 정치여론과 비슷하게 나타나던 곳이었다.

 

비슷했다는 해석은 당시 인터넷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진보를 지향하는 젊은 층이었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얼마 후인지라 갤러리 유저 대부분이 친노성향이 강했다. 이들은 당시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것이 주된 분위기였다.

 

같은 해 11월 정사갤은 그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전여옥 의원에게 토론을 제안한다. 전 의원은 이런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정사갤 내부에선 전 의원을 무시하며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탈탈 털렸다’는 표현대로 무참히 패배했다.

 

패배 후 정사갤은 다른 갤러리들의 놀이터가 됐다. 많은 유저가 정사갤에서 그들을 비웃는 글을 올리며 놀았다. 이런 분위기는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자리 잡는데, 그들을 놀리다 보니 반 진보적인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이렇게 인기를 얻긴 했지만, 정사갤의 운명은 길지 않았다. 모든 인터넷 사이트가 그렇듯 흥망성쇠가 돌고 돈다. 다만, 정사갤의 인기는 식었지만 그 정치적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코미디프로그램갤러리(이하 코갤)로 인기가 몰리자 이곳에서도 같은 성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유저들은 갤러리의 인기가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했다. 그들의 다음 종착지는 국내야구갤러리(이하 야갤)였다.

 

장면 2

야갤은 우리나라 야구가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을 들어간 기점으로 프로야구 인기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가 우승하고, 2009년 WBC에서 준우승을 하자 그 인기는 더욱 올라 디시 내에서 1위 갤러리를 차지했다. 정사갤과 코갤 등에 있던 유저들이 야갤로 몰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유입된 유저들 이전 기성유저들에 의해 이미 자리 잡은 문화가 있었다. 야갤의 주된 문화는 야구와 비슷하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옹호하고 싫어하는 팀은 비난한다. 특히 야갤 내에선 선두를 독주하는 팀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당시 2007년부터 우승을 연달아하던 SK와이번스(이하 SK)는 ‘벌떼야구’라는 투수를 많이 투입하는 경기운용을 했다. 이를 두고 야갤에선 ‘벌떼’를 벌레로 비유하며 SK를 그대로 읽는 ‘슥’과 벌레 ‘충(蟲)’을 합성해 ‘슥충’이라고 비하했다. 이런 비난은 야구단의 지역 연고로 영역을 넓혔다. 당시 SK가 사용하는 문학야구장의 흐린 날씨를 비유하며 인천을 ‘마계인천’이라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던 중 논란의 타깃을 바꾼 건 기아타이거즈(이하 기아)의 우승이다. 지난 2009년 10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기아는 SK와 붙었다. SK는 당시 주축 선수들이 부상과 악재가 겹치며 겨우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 시리즈를 보는 야구관계자들도 3:3의 스코어로 7차전까지 가는 SK에 저력이 상당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7차전 역시 접전으로 치달아 9회말까지 5:5 점수차로 팽팽했다. 문제는 SK에선 더 이상 나갈 투수가 없었던 것. SK는 결국 팔 부상을 겪으며 시즌을 치렀던 채병용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그는 전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때만큼은 팔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SK가 그만큼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9회말 기아의 타자는 이미 6회에 홈런을 때렸던 나지완이였다. 나지완은 채병용의 실투성 높은 직구를 놓치지 않고 끝내기 홈런을 치며 기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야갤의 분위기는 기존의 문화처럼 우승팀에 대한 반기로 들끓었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기아가 유리한 편파판정이 있었다는 여론과 연봉제한이 있었던 두 용병 투수에게 뒷돈을 줬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돌았다.

 

매년 하위권에 머물렀던 기아가 우승을 하니 모두가 의문을 제기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그들은 야구팀에 대한 비난을 넘어 기아의 연고인 광주지역을 비하하는데, 이때 광주민주화운동과 영호남 지역감정까지 건드렸다.

 

인터넷실명제+야구인기=일베탄생?

이는 정사갤에서 시작됐던 정치적 성향과 비슷해 더욱 힘을 얻었다. 또한 같은 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받으며 자살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여론은 그 힘을 더했다. 이에 반 진보적인 색채가 야갤의 주된 정치적 성향으로 자리 잡았다.

 

일간베스트란 말은 당시 디시 내에서 만들어진 특정 게시판에서 따왔다. 이 게시판은 그날 하루 가장 인기가 많았던 갤러리 글을 선정한다. 선정된 글은 정해진 시간에 올리는데, 이글은 일간베스트 게시 글이라 지칭했다. 글이 베스트가 되려면 댓글이 많거나 조회수와 추천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글들은 대부분 음란성이나 욕설 등이 난무한 내용이었다.

 

이런 이유로 베스트가 되자마자 운영자는 해당 글을 삭제하기 바빴는데, 유저들은 이를 두고 아쉬워했다. 베스트 글이 선정되고, 삭제하는 시간이 걸리는 틈을 노린 한 유저가 이 글들을 모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일베가 된 것이다.

 

처음 일베는 단순히 베스트 글을 모아 놓는 곳에 불과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정부가 ‘인터넷실명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나서이다. 2009년부터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인터넷사이트는 무조건 이름과 주민번호를 써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이는 디시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유저들이 ‘사이버 망명’을 시도했다.

 

‘망명 유저’들은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트를 찾기 시작했고, 당시 규모가 작아 자유로웠던 일베로 모이게 됐다. 그 후 인터넷실명제는 2012년 8월 헌재의 결정으로 효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미 일베는 야갤을 비롯해 과거 정사갤과 코갤을 즐겼던 유저들이 난입해 규모가 커졌다.

 

이들은 평소 야갤 내에서 자리 잡았던 정치관을 그대로 가져왔다. ‘애국보수’를 표방하는 일베는 5.18광주민주화항쟁에 의해 희생된 고인에 ‘홍어’라고 모욕한다. 일베 유저 중 몇몇은 고소를 당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일베는 정치적인 노선의 개념을 넘어선 만행을 하고 있다. 현재 일베는 높은 접속자 수를 유지하며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 10위권에 영향력을 갖고 있어 심각성이 더욱 커졌다.

 

앞서 설명했듯이 일베의 성향은 1등을 한 야구팀을 비하하는 문화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종종 야갤에선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당시 나지완 선수가 홈런을 치지 못했으면 일베는 탄생하지 않았을까?’라는 논제가 거론된다. 이런 의견은 일베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고개를 든다. 재미있게도 나지완 선수의 별명은 성 씨를 따서 ‘나비’이다. 나지완 선수 본인은 엮이고 싶지 않겠지만, 그의 홈런은 일베의 탄생에 기여한 ‘나비효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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