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비화 공개

“그 당시 검찰은 정말 ‘이상한 돈흐름’ 꿰고 있었을까?”

정리/김현우 기자 | 기사입력 2012/02/07 [12:04]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비화 공개

“그 당시 검찰은 정말 ‘이상한 돈흐름’ 꿰고 있었을까?”

정리/김현우 기자 | 입력 : 2012/02/07 [12:04]
▲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로 결말지어진 ‘박연차 게이트’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됐고 어디까지 진행됐던 걸까. 사진은 검찰청사.     ©펜그리고자유 자료사진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 청문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관련 파문이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됐던 ‘특검’ 도입 주장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2009년 5월 고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변호사(전 대검 중수부장)가 잦아들던 불씨에 다시 기름을 들이부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라며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해 정치권 안팎에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앞서 노무현 재단측이 조현오 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로 결말지어진 ‘박연차 게이트’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됐고 어디까지 진행됐던 걸까. 조현오 청장과 이인규 변호사의 발언으로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논란이 뜨거운 이때,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전 과정을 세계일보 법조 출입기자들이 집중 조명한 책 <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글로벌콘텐츠 펴냄) 통해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09년 1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전격 기용
태광실업 강도 높게 압박할 것 예고
1차 수사목표는 박연차 입 여는 것
정가 ‘박연차 리스트’ 괴문서 나돌아


정리/김현우 기자
▲이인규 부장의 새 대검 중수부
2009년 1월3일과 19일에 각각 단행된 검사장급, 부장검사급 인사결과를 본 기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집요하고 끈질긴 수사로 이름을 떨친 검사들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전부 모였다는 것이다.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지닌 이인규 중수부장. 2003년 초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 시절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수사를 맡아 최태원 회장을 구속한 검객이다. 형사9부가 ‘금융조사부’로 문패를 바꿔달고 특수부와 맞먹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원주지청장 시절 중수부로 파견돼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 밑에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중수부장에 이인규가 임명된 걸 보니 인물은 인물이야. 사건을 한 번 잡으면 절대 포기하거나 놓치지를 않아. 부하들이 그 앞에서 헛소리 했다가는 육두문자를 듣기 십상일 거야. 이인규는 독하게 파고들며 마구 헤집는 스타일이지.”

한편에서는 그를 정통 특수수사 검사로 분류하는 건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부도난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대기업을 압수수색한 첫 사례로 꼽히는 2003년 SK그룹 수사로 개가를 올리면서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평가가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그의 기용은 앞으로 중수부가 태광실업을 강도 높게 압박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새 진용을 갖춘 중수부의 1차 목표는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한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의 입을 여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이 부산·경남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관계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뿌렸었다는 얘기가 정치권과 언론계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여의도 정가엔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라는 괴문서가 나돌았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가족, 태광실업 임직원 등의 금융거래 내역을 샅샅이 뒤져 ‘뭉칫돈’의 흐름을 상당 부분 찾아냈다. 흐름의 종국에 어느 인물이 있고 어떤 명목이었는지를 확인하기 외해서는 박 전 회장의 진술이 필수적이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박 전 회장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로 의욕을 내비쳤다. 

검찰은 이때부터 사실상 박연차 게이트 2라운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다. 중수과장 인선과 특수수사 검사 파견은 수사를 위한 포석이었다. 이미 거친 상태의 리스트도 확보했고,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도 받은 상태에서 수사 방향과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정·관계 인사들→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이명박 정부측 인사들→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 순서로 구상했다는 사실이 한참 지나 확인됐다. 검찰의 뜻과 달리 이 수사 구도는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어그러지고 많다. 


2009년 2월/
애당초 검찰은 ‘정·관계 인사들→
천신일 등 이명박 정부측 인사들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
순서로 구상했다는 사실 확인돼 


▲‘박연차 리스트’ 70여 명 연루설
2009년 3월17일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이 검찰에 전격 체포돼 이틀 뒤 구속됐다. 2005년 4월 경남 김해갑 재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할 당시 노건평씨를 통해 박연차 전 회장한테서 불법 선거자금 5억원을 받은 혐의였다. 

이는 ‘박연차 리스트’가 언론에 등장한 뒤 처음으로 정관계 인물이 구속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검찰의 2라운드 수사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3월18일에는 박 전 회장한테서 불법 정치자금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긴급체포, 구속됐다. 

박연차 리스트의 봇물이 터졌다. 이전까지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이 구체적인 혐의와 함께 몇몇 신문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박 전 회장한테서 50억원을 받은 정황을 검찰이 파악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이 돈이 태광실업의 홍콩법인 APC사 계좌에서 미국에 거주하던 노 전 대통령 지인이 관리하는 계좌로 송금됐다고 폭로했다. 홍콩 AFC사는 박 전 회장이 태광실업의 해외 사업을 위해 세운 회사로, 검찰은 박 전 회장이 수천만 달러를 이 법인 계좌로 관리한 사실을 파악하고 경로를 추적해 왔다. 

조선일보도 박 전 회장이 전·현직 검찰 간부 7명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했으며, 그 중 고검장급 인사 1명은 10만 달러가량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3월20일 뜻밖에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검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 번개’를 제안했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것이었으나 공식석상 외에 출입기자를 따로 만난 적이 없는 그다.

“웬 일이지? 뭐 찔리는 게 있나 보니?”

“글쎄 언론보도를 단속할 모양이지. 고검장 관련설까지 보도됐잖아.”

“검찰이 오보라고는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이름이 너무 일찍 거론된 탓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얼굴이나 보자는 건 아닐 거야? 전화도 안 받고 만나주지도 않던 양반이…”

기자들이 점심 장소로 이동할 즈음 대검 대변인실은 ‘현직 고검장 박연차 돈 수수는 명백한 오보’라는 제목의 해명자료를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2009년 3월/
박연차 리스트 마침내 봇물 터진 듯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노무현 이름 등장
구체적 혐의와 언론에서 언급되기 시작
태광실업의 홍콩법인 APC 계좌 거론돼


▲중수부장과의 점심과 ‘잔인한 4월’
이인규 중수부장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수사는 철저하게 한다. (검찰)내·외부를 막론하고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 그의 성격 그대로다. 이 중수부장은 조간신문 보도에 대한 의견으로 말을 이었다.

“요즘 ‘누구누구 소환’ 이런 게 큰 뉴스인가? 고검장 연루 기사도 그래. 기사가 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일간지 1면 톱에 실릴 만한 기사인가? 그런 기사가 나오는 자체가 검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겠지만….”

이를 파고들고 한 기자가 재빨리 물었다. 뭔가 잘하면 털어놓을 듯한 분위기다.

“전국 고검장들한테서 문의전화 많이 받으셨겠습니다.”

“그런 것 없어. 오보야. 동아(일보) 기사도 마찬가지고, 나한테 확인도 안하고 썼어.”

“무엇인가 쓰기 전에 (나한테) 물어보면 확인해줍니다. 그러니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써요. 마음 같아선 한 달간 엠바고를 걸고 싶지만 안 받아줄 테고….”

이 중수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란 말은 아예 입에 올리려 하지도 않았다. 이 중수부장은 언론이 보도하는 박연차 리스트에 여러 정치인이 거론되다 보니 검찰이 억울한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을 겨냥해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어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그날 기자들 머릿속에는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만 맴돌았다. 중수부가 4월에는 뭔가 큰일을 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잔인한 4월’을 예고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받은 날이 이로부터 한 달여 뒤인 4월30일이다.

이 중수부장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노 전 대통령 수사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 내 고위급 인사가 거론되는 등 언론 보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튈 조짐을 보이자 방향을 잡아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3월/
이인규 중수부장 법조기자들과 점심번개
“내·외부 막론하고 수사는 끝까지 간다”
중수부가 4월에는 뭔가 큰일 낼 것 예고
당시 머릿속에는 수사 밑그림 그렸던 듯


▲소환되는 친노인사들과 500만 달러
중수부장이 직접 심상치 않은 4월을 내비침에 따라 기자들 사이에서는 검찰 수사대상이 될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한 조간신문 보도에서 L씨로 거론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부산·경남 지역 전·현직 의원의 소환조사 임박설이 나돌았다.

검찰 수사는 이전과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전광석화처럼 재빨랐다. 

3월27일 토요일 오전 9시30분. 마침내 현역 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광재 의원이 기자들의 눈을 따돌리고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첫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추부길씨도 이날 오전 6시 자택에서 체포됐다. 검찰 수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로 진행되었다.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의 돈 5만 달러를 받아 정치자금법을 어긴 혐의로, 추씨는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 대가로 2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사실 이 중수부장의 ‘잔인한 4월’ 발언은 그동안 박연차 전 회장을 ‘태풍의 눈’으로 한 짙은 먹구름 속에서 뇌성을 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예고한 것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됐다. 검찰이 ‘고검장 연루설’처럼 확실하게 사실을 부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변인 명의로 입장을 내면서도 이날 노 전 대통령 관련 보도를 공식 부인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수사상황을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이 중수부장의 이 발언이 전체 수사를 어그러뜨리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검찰이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온통 노 전 대통령 쪽으로 몰려 버린 탓이다. 

취재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언론의 안테나에 500만 달러 의혹이 걸려들었고 10여 일 뒤 보도로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정·관계 인사에 이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집권세력 쪽을 수사해 전·현 정권을 가리지 않고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뒤 노 전 대통령 쪽으로 옮겨가려던 계획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경륜 있는 특수수사 검사들 사이에는 ‘언론이 앞서가는 수사는 백전백패’라는 말이 있다. 마라톤 선수가 다른 선수 속도에 맞춰 달리다 보면 자기 페이스를 잃고 마는 것처럼, 언론 관심이 증폭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사사는 애초 방향과 구도를 잃고 실패하고 만다는 뜻이다.


2009년 3월/
검찰, 고검장 박연차 리스트 연루설 부인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는 본척만척
사실상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보도 시인
언론과 국민 관심 온통 노무현 쪽 몰려



논란 중심에 뛰어든 노 전 대통령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노 전 대통령,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 간의 연결고리 의혹을 풀어줄 인물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목되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2009년 4월7일이다. 홍만표 기획관이 이날 오후 기자실에 짤막한 메모를 내려 보냈다. 

‘오전 8시 사당동 주거지에서 정상문 긴급체포, 자택과 개인 사무실 압수수색.’

검찰의 정 전 비서관 긴급체포는 사실상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정 전 비서관이 총무비서관 재직시절인 2005년~2006년 박 전 회장한테서 개인적으로 수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그 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사과드립니다’로 시작되는 노 전 대통령의 글은 채 700자가 안 되는 짧은 글이었지만 그 충격과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게시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했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뛰어든 것이다. 추측으로만 나돌던 노 전 대통령측 연관성을 스스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조카사위 연씨에게 건네진 500만 달러 외에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은 돈이 추가로 있음을 공개한 셈이다. 권 여사가 빚을 갚기 위해 박 전 회장한테서 빌려 쓴 것이라고 했으나 수사 전선은 급격하게 노 전 대통령 쪽으로 쏠리기에 충분했다. 

당시 수사에 관여한 한 인사는 훗날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서 검찰이나 노 전 대통령 모두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시중 여론도 노 전 대통령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아내가 돈을 받았다면 남편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게 한국적 사고다. 그런데 책임을 권 여사에게 돌리는 듯한 사과문 내용은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다. 

언론과 여론은 사과문 게시를 사실상 시인으로 받아들였다. 돈을 받아썼다는 고백과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뿌리째 훼손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올린 데에는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체포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날 자택에서 체포된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회장한테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행여 정 전 비서관이 권 여사의 돈을 자기 책임으로 뒤집어쓸까 우려해 보호에 나선 것이다. 노 전 대통령 글에서 “혹시나 싶어 미리 사실을 밝힌다. 혹시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라고 한 대목에서 이런 심경이 그대로 읽힌다.


2009년 4월 초순/
노 전대통령 홈피에 “돈 받았다” 고백글
700자 짧은 글이지만 그 파장 어마어마
스스로 박연차 논란의 중심에 뛰어든 격
수사전선 급격하게 노무현 쪽으로 쏠려


▲고개 숙인 ‘대통령의 집사’
4월14일 아침 세계일보에는 ‘박연차 최측근 정승영, 100만 달러 전달 뒤 청와대 10여 차례 방문’이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렸다. 정씨는 태광실업 자회사인 정산개발 대표로 오랜 기간 박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 역할을 했다. 박 전 회장이 정·관계에 돈을 뿌리는 과정에서 현금 마련이나 달러 환전 등 궂은일은 늘 정씨 몫이었다. 

정씨가 청와대를 집중적으로 드나든 시기는 2007년 6월에서 9월까지다. 태광실업이 베트남 화력발전소 진출, 경남은행 인수 등 사업 확장에 사활을 걸던 시기다. 받는 쪽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업가의 후원금 정도로 여기더라도 박 전 회장으로서는 사업 과정에서 편의를 기대하고 건넸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정씨가 당시 청와대 인근 한 고급 음식점으로 정부 고위관료들을 불러 대접할 때 태광실업측 발전소 사업 담당자가 동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일보 보도는 노 전 대통령측으로 흘러간 박 전 회장 돈 600만 달러의 ‘대가성’을 의심케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았다. 

3월19일 기자들과 만난 홍만표 기획관의 입을 통해 정 전 비서관 긴급체포 사실이 공개됐다.

“자정에 정상문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박 전 회장과 상관없이 별도의 금품수수 혐의입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연차 전 회장한테 3억원을 받아 내게 전달했다”는 권양숙 여사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었다. 권 여사가 문제의 3억원을 “빚 갚는 데 썼다”고 했으나 확인 결과 정 전 비서관이 관리하는 계좌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12억여 원에 대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조성한 자금”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도덕성을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재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요청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참 면목 없는 일입니다. 정 전 비서관이 왜 그랬는지 우리로선 알 길이 없고 충격적입니다.”

3월21일 밤늦게 수사관 두 명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모습을 드러낸 정 전 비서관의 얼굴에는 절망의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한 말씀 해주시죠.”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에게 특히 죄송합니다.”

“횡령 사실을 노 전 대통령도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모르는 사안입니다.”

사석에서 노 전 대통령을 ‘무현아’라고 부를 만큼 막역한 평생지기이자 권 여사, 건호씨 등 가족 문제까지 세심히 챙겨준 영원한 ‘대통령의 집사’는 그렇게 구치소로 향했다. 한 달쯤 뒤 장례식을 위해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봉하마을을 찾아 영정 속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야 했다. 


2009년 4월 중순/
정상문 전 청와대 전 비서관 긴급체포
대통령 퇴임 이후 자금 12억 조성 진술
사석에서 ‘무현아’라고 부르던 평생지기
영원한 ‘대통령의 집사’마저 구치소로…


▲대통령 일가로 바짝 다가선 검찰
4월9일 아침 언론보도의 수위는 상당히 높아졌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형과 조카사위의 등장에도 검찰의 ‘확인불가’ 코멘트 속에 언론이 노 전 대통령 쪽을 거론하는 것에 주저주저했으나 이제 그 선이 무너진 것이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유학중인 건호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이후 건호씨가 뉴스의 인물로 등장했다는 뜻이다. 

언론의 관심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서 아들 건호씨로 곧바로 옮겨갔다. 검찰이나 언론은 박 전 회장의 돈이 연씨의 예금계좌로 흘러 들어갔지만 실은 건호씨를 겨냥해서 건네졌다고 보았다. 큰 그림이 ‘박연차→연철호→노건호→노무현’, ‘박연차→정상문→권양숙→노무현’ 두 구도로 그려져 가는 셈이다. 

500만 달러에 대해 ‘연철호씨 사업 투자금일 뿐이다’, 100만 달러에 대해 ‘권 여사가 채무변제를 위해 빌린 것이다’는 노 전 대통령측 입장과 확연하게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 글에서 “제가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프레임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은 이런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건호씨가 본격적으로 거론됨으로써 수사의 최종 귀착지는 분명해졌다. 바로 노·무·현, 노 전 대통령이다. 


2009년 4월 마지막 날/
검찰 불려간 노 전 대통령 100만 달러
직무 연관성 캐려는 검찰공세 안 넘어가
“박연차에 빌려 아내가 빚갚는 데 썼다”
조카사위 500만 달러 연관성도 강력항변



▲소환 임박 속 나쁜 빨대 논란
4월22일 5시53분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6번째 글을 올렸다. 2008년 형 건평씨 구속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심적 고통과 번뇌를 겪었는지 그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 건평씨 관련 사실이 거론됐을 때만 하더라도 ‘설마!’하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지향한 그로서는 측근, 특히 ‘형님’읠 부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설마 하던 기대가 무너지자 대국민사과를 하려고 했으나 적당한 계기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소시민처럼 ‘형님이 하는 일을 일일이 감독하기가 어려웠다.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스스로 변명한 사실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500만 달러, 100만 달러가 검찰에서 나오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법률적 판단을 떠나 이미 도덕적인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는 말이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것임을 알면서도 국민이 겪을 실망과 정치적 동지들에게 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청와대 국고에 손을 댄 혐의로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는 말에서는 고개 숙인 노 대통령의 상실감과 체념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제안했다.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를 닫자고, 그리고 그는 당부했다.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이날 밤 언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9월 회갑 때 박 전 회장에게서 1억 원짜리 명품 피아제 시계 2개를 선물로 받았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통칭 ‘쯔끼다시(곁밭찬)’로나 다뤄지는 가십 기사였다. 당사자에게는 범죄 혐의와는 직접 상관없이 깊은 상처를 주는 내용이었다. 

검찰도 이런 내용이 보도된 것에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이 사실은 검찰 쪽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검찰 내 이른바 ‘빨대(정보원)’를 통해 흘러나온 팩트가 틀림없다.

홍만표 기획관은 브리핑에서 “검찰에서 확인한 양 보도했는데, 아니다. 해당 기자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내부에 형편없는 ‘빨대’가 있다는 것에 굉장히 실망했다.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빨대 색출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이 ‘빨대’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자 ‘나쁜 빨대’는 검찰 내 정보원이 아니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검찰 외 다른 사정기관이 흘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이 집무실에서 방송 보도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로 검찰은 당황했다고 한다. 임 총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인규 중부부장에게 “누구인지 반드시 찾아내라!”고 바로 지시했다.

홍만표 기획관의 ‘나쁜 빨대’ 언급은 전날 검찰총장이 화를 낼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간 검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홍 기획관의 언급은 고급시계 선물 보도내용이 허위가 아니라는 걸 간접적으로 시인한 결과가 돼 버려서 두고두고 ‘실수’로 지적됐다.


▲전직 대통령, 검찰청에 서다
2009년 4월30일 오전 8시 경남 진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경비초소 앞 주차장. 은색 스타렉스 승합차가 멈춰 서자 노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12월5일 봉하마을 방문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한 지 꼭 146일 만이다. 

노 전 대통령은 몸을 숙여 승합차에서 내려오면서 검정색 양복 윗도리 단추부터 채웠다. 무표정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읽힌다.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취재진을 한 번 쳐다본 뒤 발걸음을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담시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서너 걸음 더 걸어 멈춘 뒤 자세를 바로잡고 취재진을 응시했다.

“예…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두 손을 앞으로 가져가 공손히 모으면서 말을 하던 그는 순간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그렇게 3초가량 흘러 다시 고개를 들어 입을 뗐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가서…잘 다녀오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40인승 버스로 향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까지 1000리 길을 태우고 갈 검찰행 버스였다. 가족의 일로 남편에게 검찰조사라는 치욕을 안겨주게 된 권양숙 여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측은 박연차 전 회장에게서 받은 100만 달러는 권 여사가 빚을 갚는 데 썼고, 500만 달러는 조카사위가 투자 명목으로 받아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온 만큼 노 전 대통령의 조사는 온전히 가족의 일 때문이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사저 밖 계단을 내려오다 발걸음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2분가량 지나서야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하염없이 흐느끼는 권 여사를 위로했다고 한다. 권 여사는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아침에 여러 분위 위로 말씀에 권 여사가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피의자’ 노 전 대통령

 

▲ 검찰에 불려간 노 전 대통령은 100만 달러의 직무 연관성을 밝혀내려는 검찰의 공세에 넘어가지 않았다. 서면답변서 내용대로 “나는 몰랐다. 집사람이 박 전 회장에게서 빌려 빚을 갚는 데 썼다”고 말했다.     © 펜그리고자유 자료사진
 
그는 또 “최근에야 100만 달러 존재를 알았고, 사용처는 사적인 문제라 말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검찰은 미국 유학중이던 장남 노건호씨가 국내로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달러를 송금받아 생활비로 쓴 내역도 증거로 제시했으나 이를 인정하는 진술을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오후 7시35분 조사가 재개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2008년 2월 말 태광실업 홍콩 현지법인 APC 계좌에서 빠져나가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건너간 500만 달러 부분을 묻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의혹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는 전혀 몰랐다. 퇴임 후 조카사위가 투자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100만 달러의 경우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로 전달된 만큼 ‘도의적 ’ 책임을 인정했으나 500만 달러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다 큰 조카사위가 하는 사업에 대통령이더라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500만 달러 관리에 ‘지배력’을 행사한 사람은 연씨가 아니라 아들 건호씨란 증거를 들이밀며 파고들었다. 건호씨가 500만 달러 중 일부를 ‘오르고스’ 등 국내 기업에 투자한 자료가 제시되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건호씨의 외삼촌인 권기문 전 우리금융지주 상무를 소환조사해 건호씨가 국내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오르고스에 일부 자금을 투자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오르고스 압수수색을 통해 통장과 외환거래 내역도 확보한 상태였다.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비서관 시절 빼돌린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은 답변서 내용과 똑같이 진술했다. 검찰이 “대통령 최임 후 건네려 했다”는 정씨 진술을 전하자 노 전 대통령은 “오랜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니 할 말은 없다. 쓸데없는 일을 한 것 같은데 제대로 살피지 못한 도의적 책임은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문은 밤 11시20분 모두 끝났다. 신문이 끝날 무렵 검사가 노 전 대통령에게 “박 전 회장이 와 있는데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만합시다”라고 거절의 뜻을 나타냈다. 문재인 변호사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아니고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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