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신데렐라 실종 추리소설보다 섬뜩 미스터리

시신 없는 살해 용의자는 남친...부잣집 아들이라더니 집안·학력·직업 죄다 ‘구라’

이상호 기자 | 기사입력 2014/08/04 [15:50]

29세 신데렐라 실종 추리소설보다 섬뜩 미스터리

시신 없는 살해 용의자는 남친...부잣집 아들이라더니 집안·학력·직업 죄다 ‘구라’

이상호 기자 | 입력 : 2014/08/04 [15:50]
가난한 집 딸, MBA 밟는 부잣집 아들과의 결혼 위해 미국행 선택
결혼하러 미국 간 딸 연락 안돼 출입국 관계 살폈더니 출국사실 없어
미국 산다던 부모는 국내에서 폐품 팔아 생활…그 남친 학력은 고졸

▲ 사진은 '29세 신데렐라 실종사건'에 대해 심층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한 장면.     ©

실종된 지 1년 6개월 생사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언니를 찾아 달라는 한 여동생의 간절한 호소가 인터넷 한 청원 사이트에 올라왔다. 누리꾼 1만 명이 온라인 서명을 하면 경찰과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하겠다는 내용이다. 지금 약 6000여 명이 서명한 상태. 이 사건은 ‘사라진 신데렐라’라는 제목으로 지난 7월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도 방송을 해서 큰 파장을 남기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치위생사인 예비신부 이방연씨는 명문대를 졸업한 부잣집 아들로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을 예정인 남자친구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씨를 두고 이른바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처럼 신분상승과 부를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신데렐라’가 홀연히 사라졌다.


취재/이상호 기자
29세의 치위생사 이방연씨. 결혼에 대한 고민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고민이 커져만 갔다.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을 예정인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힘겹게 자란 자신과 달리 그녀의 남자친구 정모씨는 소위 명문대를 졸업한 부잣집 아들이었다.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그의 부모님은 뉴욕에서도 손꼽힐 만큼 이름난 사업가였는데,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래 전부터 탐탁찮게 여겨왔다고 한다.
그러다 2012년 무렵, 남자친구가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부모님들의 반대는 더욱 거세졌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방연씨와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친구 정씨가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 그래서 지금 바로 미국에 같이 가야 되겠다, 안 그러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해서 이방연씨는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과 치위생사라는 직업을 모두 포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다. 남자친구와의 미국행은 방연씨에겐 갑작스런 제안이긴 했지만 4년의 연애가 결실을 맺으려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남자친구는 좋은 학벌과 외모, 집안형편 등 자신보다 더 좋은 여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음에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백마 탄 왕자’와 다름없었다. 자신을 반대하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여전히 고민이었지만, 자신만 믿으라며 ‘가서 결혼해서 잘살자’는 남자친구의 적극적인 제안에 함께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출국 예정일은 2013년 1월24일 오전 9시. 사람들은 미국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방연씨를 ‘신데렐라’에 비유하며 부러워했다. 출국 전날까지 주위에 인사를 다니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난 후,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 이씨는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런데 이 남자친구는 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거고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가족은 이방연씨가 당연히 미국에 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 것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실종 69일 만에 이씨 가족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게 된다.
이씨의 가족이 이와 관련해 출입국 관계를 알아봤더니 전혀 출국한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씨가 실종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이 바로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친구 정씨의 정체
경찰조사에서 이씨의 남자친구 정씨는 뉴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부모가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씨의 아버지는 리어카에 고물을 주워서 팔았고, 집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씨는 또한 지방에서 대학 1학년만을 다니다 중퇴한 상태였다. 직장경력이라고는 보험회사를 잠깐 다닌 것이 전부였다.
더 문제인 것은 정씨가 피해자 이씨와 사귀는 동안에 다른 여성 서너 명과 각기 다른 동거를 하면서 그 여성들로부터 생활비를 얻어 쓰는 대단히 기생적인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유학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상태였던 정씨는 “미국 유학을 가자”고 해서 이씨가 자신이 세 들어 살고 있던 보증금 700만원을 빼게 만든다. 정씨는 이씨의 실종 직후, 700만원을 전부 유흥비로 탕진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 이씨가 그 이후 국내에서 신용카드를 쓴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도 이씨가 아닌 정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자아냈다. 또한 이씨의 실종 이후에도 그는 새로운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등 믿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고, 이씨 실종 하루 전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그는 이씨가 사라진 직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이씨의 짐도 모두 처분했으며 자해용이라며 회칼까지 구입하는 행동으로 의심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수사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실종 직후 정황에 대해서는 정씨의 말 자체는 계속 바뀐다. 경찰수사 단계에서 그는 이씨의 행적과 관련해 “안다,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살인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아니다”고 답했지만 거짓말탐지기 반응에서는 ‘거짓’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씨는 실종 이후로 은행 거래, 신용카드, 통신연락 등의 흔적이 없는 상태. 즉 살아 있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 남친 처벌 가능할까?
현재 경찰과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서 기소를 한 상태다. 그런데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 문제. 결국 검·경은 살인 사건으로 기소하지 못하고 정씨가 이씨를 속여서 700만 원을 편취한 것과 이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부분들과 관련해 사기죄, 그리고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으로 기소를 한다.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살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거운 처벌을 해달라”면서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살인으로 기소를 하든지, 기소를 하지도 않은 범죄를 가지고 사기 범죄에 대해서 살인의 형량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고 법원이 밝힌 것이다. 결국 정씨는 징역 2년형을 현재 선고 받은 상태.
하지만 시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살인죄,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본다면 1954년 영국에서 농장주가 실종된 사건이 바로 그렇다. 경찰이 수사 끝에 살인의 가능성을 정황증거로 제시를 하고 법원에서 재판이 벌어진 사건인데, 당시 영국 대법원장 고다드는 “죽음 역시 정황증거로 입증 될 수 있다. 증거들이 오직 한 결론에 도달하고 이를 배심원들이 인정하는 한 시신 없이도 살인죄는 인정될 수 있다”면서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이것을 ‘고다드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이 원칙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면서 미국·호주 등에서 유사한 판결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0년에 부산에서 발생한 쉼터 여성을 유인 살해한 후 화장한 사건에서, 시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살인에 대한 유죄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의 표창원 소장 역시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시신을 찾지 못하면 살인이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받을 수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는 않다”고 잘라 말하면서 “시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살인죄,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사건은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를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는 유족의 청원처럼 철저하게 재수사를 통해 시신을 찾거나 증거들을 확보, 이후에 다시 기소를 하는 것이 있다. 또 하나는 추가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모아진 증거와 정황, 단서들, 진술들을 모아서 철저하게 법적 논리를 구상하고 시신 없는 살인에 대해 기소하는 것이다. 235s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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