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波, 그들은 누구인가?...정치·철학적 이해와 해석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문파는 한국 정치 새판짜기 요구하는 정치적 현상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8/12/26 [11:05]

文波, 그들은 누구인가?...정치·철학적 이해와 해석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문파는 한국 정치 새판짜기 요구하는 정치적 현상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8/12/26 [11:05]

2016년 후반~2017년 초반 이른바 촛불혁명(촛불시위)을 통해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교체했다. 국정 농단으로 비롯된 촛불혁명은 기존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심판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촛불혁명을 관통하면서 이른바 ‘문파’ 혹은 ‘문빠’가 형성되었다. 즉, 대의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의회와 언론이 주권자인 시민을 대변하지 못하자, 시민 스스로 자신들의 의견과 의지를 대변하는 정치와 매체를 만들려는 흐름 속에서 ‘문파(文波)’ 혹은 문빠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처럼 사소하고 일시적인 듯 보이지만,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우리 시대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중대한 정치 현상이다. 그런데 한 철학자가 시민들의 민주적 정치 현상인 문파에 대해 정치적·철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책을 선보여 서점가에서 거센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박구용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지난 11월 펴낸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메디치미디어)에서 의회와 언론이 시민을 대변하지 않는 시대에 새로운 주권자로 등장해 한국 정치의 새판짜기를 강요하는 문파의 탄생을 ‘시대 흐름’으로 해석한다. 문파, 그들은 누구인가? 박 교수의 책을 바탕으로 대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파’를 집중탐구한다.

 


 

한국 정치 앞마당에 ‘문파’ 혹은 ‘문빠’라 불리는 파도 거센 이유
‘문파’는 문재인 플랫폼 기반으로 펼쳐지는 민주정치 지지자 개념

 

문 대통령 향한 공격 그저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강력히 반격
문파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아
자신들의 의견과 의지를 스스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정치 팬덤’과 달라

 

문파와 노사모는 생성 과정은 비슷했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점 뚜렷~
노사모는 386이 권력 중심에 서서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소멸

 

시민들이 문파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의회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
의회와 언론이 제 역할 못한다는 판단 들자 SNS 매개로 직접 목소리
정부여당, 문파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때 ‘문파의 권력’ 폭력 둔갑할 수도

 

“한국 정치 앞마당에 이른바 ‘문파’ 혹은 ‘문빠’라 불리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이 파도에 한국 정치를 오랫동안 관할·통제 해온 의회의 권력자들이 밀리거나 쓸려 나가고 있다. 문파 혹은 문빠는 의회만이 아니라 광장의 권력자들도 소환하고 문책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를 지지하고,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문파(문빠)가 다수 야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문파(문빠)는 수구 보수·우파만이 아니라 진보·좌파까지도 거침없이 비판한다. 문파(문빠)는 전통적인 정치적 이분법인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문파(문빠)가 무당파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문파(문빠)는 새로운 당파성을 견인한다. 문파(문빠)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만이 아니라 한겨레신문·경향신문·오마이뉴스(이하 한·경·오)와도 대결을 펼친다. 한·경·오는 오랫동안 진보 진영을 대표해온 언론들이다. 그러나 문파(문빠)는 한·경·오가 무당파적 보편성이라는 신화에 갇혀 있다고 몰아붙인다.”


박구용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말이다. 세계시민적 관점으로 학문과 예술을 연구하고 다원적 학문 성장과 건강한 학술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철학자 박구용 교수는 최근 펴낸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메디치미디어)에서 문파의 탄생을 ‘시대의 흐름’으로 해석했다.

 


박 교수는 “문파(문빠)는 한국 정치의 새판짜기를 요구하는 정치적 현상”이라면서 “의회와 광장의 교차로에 선 문파를 정치적·철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문파에 대해 분석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문파와 문빠 차이는 뭔가?


그렇다면 ‘문파’와 ‘문빠’는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알려져 있기로는, 문빠는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반면 문파(文波)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또 남들이 불러주기를 바라는 명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 문파(문빠)는 당파성을 명확히 한다.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그들의 말은 당파성을 넘어 편파성을 의심케 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문파와 문빠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면서 “현실의 세계에서 둘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파(문빠)는 당파성을 명확히 한다.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그들의 말은 당파성을 넘어 편파성을 의심케 한다. 더구나 그 당파성이 문재인이라는 한 정치적 인격체와 결합되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그만큼 사람들을 자극한다. 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문파를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문빠는 달빛기사단, 문팬, 문꿀오소리, 문각기동대, 문위병, 문슬림, 문베충이 버무려진 이름이다.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말들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문빠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스스로 문빠라고 칭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압박하는 문자 발송 과정에서 문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에게는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의 주체였다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적폐청산을 넘어 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적극적 시민정치 활동을 펼친다는 자부심도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된 사안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문 대통령을 향한 공격을 그저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하게 반격하기도 했다.


평화시대의 문이 열리면서 ‘나도 문빠다’ ‘국민이 문빠다’라고 명시적으로 외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펼치는 국정에 대한 지지도가 한때 80%대까지 치솟으면서 문빠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문빠라는 표현 자체가 ‘정치 팬덤’의 성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지지자들조차도 문빠보다는 문파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이는 문빠라는 말에 숨겨진 냉소를 털어내면서도 그들 스스로가 갖는 당파성을 드러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의 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 나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과 의지 형성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문빠나 문팬으로 보는 쪽은 이들을 정치 팬덤으로 축소해서 해석하는 쪽이다. 다시 말하면, 문빠나 문팬이라는 명칭 속에는 이런 사람들의 활동을 문재인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팬덤으로 한정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달리 문재인이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민주정치에 대한 당파적 지지자의 총괄 개념으로 ‘문파’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문빠는 팬덤, 문파는 현상


그러나 박 교수가 말하는 문파는 특정 정치인(문재인)에 대한 정치 팬덤인 문빠와 구분된다. 그가 말하는 문파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를 지지·지원하면서 시민 주권과 민주주의의 복원을 지향하는 공론과 공감의 상호 주체들과 그들의 활동 및 효과를 총괄하는 개념이다. 문빠가 정치 팬덤이라면, 문파는 정치 현상이라는 것이다.

 

▲ 한국 정치 앞마당에 이른바 ‘문파’ 혹은 ‘문빠’라 불리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이 파도에 한국 정치를 오랫동안 관할·통제 해온 의회의 권력자들이 밀리거나 쓸려 나가고 있다.    


“촛불혁명을 관통하면서 형성된 문파는 현실과 가상의 구별이 사라진 한국 정치의 새로운 도전적 현상이다. 더구나 정권 교체 이후에도 문파와 그 상징적 인물들은 물리적 권력을 차지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해볼 때, 문파가 골목길과 실개천을 타고 흐르는 의사소통적 권력을 계속해서 향유하는 이유는 두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즉, 문재인이 문파의 소유권자 행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문파가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문파의 힘은 그것이 현상으로 머물러 있을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문파는 이른바 ‘박빠’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뿐 아니라, ‘안철수 현상’과도 다르다. 박빠나 박사모는 박근혜라는 한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함으로써 그 규모나 영향력이 초라하게 축소되었다. 또한 한국의 정치 지형을 순식간에 뒤엎을 만큼 막강했던 안철수 현상도 정치인 안철수 개인이 소유하려들자 사라져갔다. 하지만 문파는 아직까지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의견과 의지를 스스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문파와 노사모 차이는?


그렇다면 문파와 가장 유사한 이들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 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중핵이었던 386 운동권 세력이 역사적 진보사관과 소명의식에 사로잡힌 ‘진리의 정치, 도덕의 정치’를 유포한 전도사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참여정부에 적대적인 세력과 우호적인 세력이 은밀하게 이 지점에서 묘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여정부 일부 핵심 인사들의 독선과 오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노무현과 386 운동권 전체를 싸잡아서 ‘진리의 정치, 도덕의 정치’를 한다고 몰아세웠다. 이들은 참여정부가 자신들의 독선적 진보사관을 관철시키기 위해 새로운 시대의 변화된 현실을 무시한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노무현과 386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진리와 정의의 편에 놓고, 반대편은 허위와 불의를 대 변하는 극복 대상으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 국정 농단으로 비롯된 촛불혁명은 기존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심판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특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매우 보수적이며, 대부분 수구적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문재인 정부도 같은 논리로 비판한다. 그러나 그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만약 한반도가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다면 이들의 정치적 미래는 전례 없이 어두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지역 패권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지역 패권주의의 한 축을 형성했다. 어느 순간에는 새천년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도 지역 패권에 기대어 보수정당과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노사모다. 자발적인 시민의 정치적 결사였던 노사모는 지역 패권주의와 그것을 매개로 한  정치 세력의 적대적 공존에 저항했다.”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사람들과 노사모 역시 지역 패권주의에 갇혀 있다는 비판의 소용돌이가 한때 호남을 중심으로 거세게 휘몰아쳤다. 이 비판은, 참여정부 영남 패권주의로 극단화되었다. 그런데 이 비판은 노무현과 노사모보다 문재인과 그의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이 비판을 주도한 사람들은 강준만·김욱·고종석처럼 대체 로 호남의 정치적 소외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호남 안에서의 정치적 패권에 대해서는 둔감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들의 비판을 기반으로 영남 패권, 문재인 패권을 비판하는 호남 내부의 패권자들이 국민의당을 탄생시켰다.


1987년 체제 아래에서 민주당은 영남 패권주의에 포위된 정당이었다. 영남 패권주의는 영남 지역이 한국의 정치 권력을 독점한다는 말이다. 그런 영남 패권주의에 민주당도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호남 내·외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패권을 행사했다. 이로 말미암아 민주당 내부의 갈등이 증폭되었는데, 그 갈등은 노사모로 대변되는 정치 혁신 세력과 호남 정치의 기득권 세력 사이의 갈등이었다. 문재인과 박지원의 당 대표 선거 경쟁은 이 갈등의 크기를 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호남 정치의 기득권 세력은 안철수와 손을 잡고 딴살림을 차렸고,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지역 패권주의와 결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촛불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에는 노사모에서 문파로 이어지는 거대한 심줄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은 이제 지역 패권주의에서 자유로워졌다. 특정 지역 출신의 정치인이 더 이상 한국의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정치권력도 장악하고 있지 않다. 노무현 과 노사모가 꿈꿨던 지역 패권주의 극복이 적어도 민주당 내부에선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는 민주당이 전근대적 보수정당이라는 명제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듯 문파와 노사모는 생성 과정은 비슷했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 노사모는 권력을 추동했던 386이 권력의 중심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소멸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수용, 대연정 제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에 영남패권주의가 끼어들면서 많이 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문파는 아직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의견과 의지를 스스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한다. 386을 위주로 한, 이른바 ‘입진보’(행동 없이 말만 앞세우는 진보)가 했던 비판적 지지에서 벗어나 당파적 지지로 해석할 것을 주문하는 점, 정치적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을 읽으라고 강조한다.

 

괴물이 아니라 시민 주권자


“문파를 노무현에 대한 부채 의식과 집단적 피해망상의 발현이라고 치부하는 시각이 많다. 문파가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각성을 시작한 시민 집단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파는 반항하는 인간들 개개인이 아니라 반항의 과정에서 형성된 집단의식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의식을 각성한 사람들의 의사소통적 연결망이다.”

 

▲ 평화시대의 문이 열리면서 '나도 문빠다' '국민이 문빠다'라고 명시적으로 외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사진공동기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문파를 ‘인터넷 좀비’쯤으로 생각한다. 혹여 문파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람들도 문파를 일시적인 정치 팬덤 정도로 취급한다. 또한 문파를 특정 정치인의 카리스마에 도취된 나머지 떼로 몰려다니면서 정치 지형을 파괴하는 괴물이나, 가면을 번갈아 쓰면서 진짜 모습을 숨기는 요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문파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박 교수는 9개월 동안 진행한 심층대화 형식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문빠라고 생각합니까’ ‘문빠는 문재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를 지지할 것입니까’ 등 30개 가까운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이 만난 문파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내가 만난 문파들은 괴물도, 요물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려는 시민 주권자들일 뿐이었다. 내가 만난 문파는 각자 자기 생각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다양한 얼굴의 시민들이었다.”


결국 “문파는 전통적인 의미의 주권자가 아니고, 옛 주권자들처럼 동질적 집단도 아니다”는 게 박 교수의 해석. 모두가 같은 ‘나’가 아니라, 나로 있기도 하고 ‘너’로 있기도 하며, 나와 너가 저항의 과정에서 형성한 ‘우리’가 문파라는 것이다. 문파는 혈연뿐만 아니라 지역이나 직업의 동질성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조직도 결성하지 않았다. 또 그들은 노동운동, 시민운동, 마을운동을 비롯한 그 어떤 사회운동의 특성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시민의 역할을 축소하고 왜소하게 만드는 일련의 흐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구성되고 해체된다.


이런 문파는 의회와 언론이 시민들의 의견과 의지보다 자본의 이해와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포스트 민주주의(post democracy) 현상에 저항하며 새롭게 등장한 주권자다. 주권자로서 문파가 공적 담론에 참여하는 방식은 새로운 만큼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들의 이질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을 ‘좌파 포퓰리즘’이나 ‘문빠’로 규정한다. 그러나 문파는 다소 이상하게 출현한 새로운 주권자의 이름이다.


박 교수는 “낯설기는 하지만 문파가 제기하는 공론과 공감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면서 “문파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건강한 대의민주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토의정치가 결사체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형식으로 강화돼야 하는데, 문파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문파가 정치 현상인 이유


“내가 문파를 정치 현상으로 규명하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들이 새로운 민주주의 형식을 써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형식이란 시대 또는 시대정신에 맞는 민주주의, 즉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새로운 시대는 그 시대와 어울리는 민주주의 형식을 요구한다. ‘지금, 여기’가 새로운 시대인 것은 의사소통과 공론 형성 방식의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파 방송이 여론 형성을 주도했던 시절은 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이 패러다임의 중심을 이루는 계몽의 시대였다. 이런 계몽주의 시대에 극소수의 여론 주도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은 계몽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이 시절은 끝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이미 오래전에 새로운 시대가 왔다. 개개인의 의식과 무관하게 새로운 시대는 이미 우리의 거실과 안방 깊숙이 들어와 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매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수시로 왕래하며 공적 의견과 의지를 형성한다. 한 방향으로 의견이 전달되던 시대가 끝났을 뿐 아니 라, 양방향 소통을 찬미하던 시대도 끝났다. 나와 너의 양방향 소통은 다방향 소통을 한 차원으로 정지시킨 축소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한 방향이나 양방향 모두 선형적(linear) 관계 맺음일 뿐이다. 이제는 입체적(complex) 다방향·다차원 소통의 시대가 되었다. 이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정제된 이성적 계몽이나 담론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이 다차원적으로 공유되고 소통되는 의견과 의지 형성을 요구한다. 문파는 이런 요구에 대한 반응이자 출현(emergence)인 동시에, 그런 요구를 당파적으로 제기하는 정치 행위를 한다.”


사실 지식인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담론을 주도하면서 오랫동안 담론 권력을 독점해왔다. 물론 지식 권력자들 사이에는 이념적 갈등과 투쟁이 있지만, 한편으로 이들은 서로 적대적 공존을 유지해왔다. 이들뿐만 아니라 의회의 정치인들, 광장의 활동가들,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매체(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언론인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교육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대적 공존이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문파는 의회와 광장에서 이런 적대적 공존으로 오랫동안 권력을 분점해온 세력의 재구성, 즉 한국 정치의 새판짜기를 강요하고 있다. 특히 특정 지역 내부의 일당독재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중앙 권력을 분점해온 방식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무엇보다 의회와 광장을 연결하는 미디어 권력의 교체를 주도하고 있다.


박 교수는 “시민들이 문파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의회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풀이하면서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의회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판단이 들자 시민들은 SNS를 매개로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문파는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보편적 진리와 도덕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거나 실현하려는 집단이 아니다. 전통적인 진보 세력은 역사적 진리와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더 나은 세상, 더 인간적인 세상, 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진보 세력의 열망은 역사 발전의 필연성에 대한 신념 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의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386 운동권 세력은 자기 희생을 감내하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어느덧 역사적 진리와 정의, 그리고  그에 대한 역사적 사명 의식과 실천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보다 위험에 빠뜨리는 시점에 이르렀다. 역사적 진보와 소명에 대한 믿음은 전쟁과 폭력의 이데올로기로 전락 할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 이미 오래전에 판명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그 어떤 진보 정치에도 반대한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곧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다. 더구나 포스트 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자 또한 이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 있다.”


“행동하는 시민은 한 번에 모순을 제거할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모순을 수행하는 시민은 모순이 사라질 때까지 모순을 폭로하며 모순과 함께 길을 간다. 모순은 사라질 때까지 모순적이다. 모순을 품고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파는 자연 소멸할 것”


박 교수는 “철학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 현상을 직접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쓴 이유는 “문파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불필요한 적대감과 출처 없는 분노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문파는 논의가 필요한 텍스트의 콘텍스트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달콤한 말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수많은 맥락을 횡단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찾아가는 문파를 우리는 일명 페리스타시스peristases(‘정황’을 뜻하는 그리스어)에 민감한 파르헤지아스트parrhesiastes(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모두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개개인은 좌충우돌하지만 그들이 참여해 구성한 의견과 의지는 콘텍스트에 민감한 텍스트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는 공론과 공감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촛불혁명과 촛불정부의 탄생 과정에서 팟캐스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파는 공감을 촉발시키고 공론을 자극했다. 공감장 없는 공론장은 공허하고 지루하다. 그만큼 오랜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반면 공론장 없는 공감장은 무모하고 폭력적일 수 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론 없는 공감은 맹목이고, 공감 없는 공론은 공허하다. 촛불혁명과 촛불정부는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형성되는 공감이 없었다면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형성되는 공감장이 없다면 촛불정부는 쉽게 좌초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문파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박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는 날 문파는 자연 소멸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정치 현상으로서 문파는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회귀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문파는 시민 주권자들의 공적 의견과 의지를 단기적으로 가리키는 이름이기 때문이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이름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다양한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할 시민 주권자들의 힘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만약 현재의 의회와 정당이 이들의 힘을 무시한다면, 이들은 스스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거나 새로운 의회를 요구할 것이다. 이미 스스로를 대변하는, 예컨대 팟캐스트로 대표되는 새로운 매체를 만든 이들이 새로운 정당이라고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정당과 의회가 시민 주권자들의 의견과 의지를 제대로 대변한다면, 새로운 정당과 의회의 출연은 다소 지체될 것이다.”“문파는 비당파적 당파다. 하나의 이념을 가진 조직이나 기관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실체적 권력을 향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파가 ‘우리’ 안팎에 타자를 감금하고 배제한다면 스스로 분화되면서 해체될 것이다. 그러니 문파 스스로 폭력을 조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실제적 위험성은 문파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다만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광장과 의회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문파를 인위적으로 조직하거나 조작할 때 문파의 의사소통적 권력은 폭력으로 둔갑할 것”이라며 ‘정치적 이용’은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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