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없는 살인사건... 자백만으로 유죄인정 되나?

이상호 | 기사입력 2013/07/01 [09:36]

시신없는 살인사건... 자백만으로 유죄인정 되나?

이상호 | 입력 : 2013/07/01 [09:36]

영화 <의뢰인>같은 이야기 실생활에서도 유무죄 엇갈려
유일한 증거였던 ‘자백’만으로 유죄 인정 어려워져

 
하정우 주연의 영화 ‘의뢰인’에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을 두고 엇갈리는 변호사와 검사의 재판 과정이 흥미롭게 다루어졌다. 하지만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은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벌어졌던 사건이다.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은 최근에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로 판단된 사례와 무죄로 판단된 사례가 모두 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살인 사건의 핵심 증거인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피고인의 범죄라고 볼 수 있는 정황 증거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졌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백하고 정황이 뒷받침 되는 경우 살인에 대한 유죄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직원인 김모씨가 회사의 사장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하면서 “피고인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경우 진술 내용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그리고 자백 이외의 다른 증거 중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은 없는지 등을 고려해 신빙성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며 “증거에 비추어 김씨 자백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법원은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한 동업자를 땅에 묻어 살해한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매장 장소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핵심 증언의 신빙성이 강력한데다 가까운 사이인 피해자가 사라졌음에도 피고인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등의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일부 증인의 믿기 어려운 진술을 배제해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에서는 피고인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 설치된 CCTV에는 피고인의 아내가 실종 당일 집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고, 이틀 뒤 새벽에는 피고인이 자신의 집에서 쓰레기봉투 5개를 들고 나와 승용차에 싣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찍히는 등 정황증거를 근거로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5년 발생한 ‘대전 방동저수지 살인사건’은 또 다른 사례다.
한모씨는 2005년 9월과 2006년 1월 동거녀인 A씨가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승합차에 감금,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5년 12월28일 새벽 대전 서구 변동에서 동거녀의 언니 B씨를 공범 C씨와 함께 승용차에 강제로 태운 뒤 2시간 남짓 감금하고, C씨가 차에서 내린 뒤 혼자 B씨를 대전 유성구 방동저수지로 데려가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동생의 동거를 반대했던 B씨는 사건 당일 이후 생사불명 상태다.
동거녀의 언니를 납치·감금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당시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도 불렸다. 살인 혐의를 받았던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 ‘자신이 동거녀 언니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피고인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왜 범행을 자백했던 피고인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봤을까.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던 것도 근거가 됐을 수 있지만, ‘시신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의 자백만으로 기소된 살인 혐의를 유죄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범행방법이나 사망경위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사소송 원칙상 살인죄에 대한 중한 형을 선고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재판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파기환송됐고, 지난 2008년 대전고등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과거 ‘증거의 왕’이라고도 불렸던 자백.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
하지만 ‘자백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확립된 이후로 자백은 증거의 왕이 아닌 서자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자백이 항상 진실을 반영하고 절대적인 증거가 되는 것일까’란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제310조)에서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일 때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자백의 보강법칙을 말하는 것으로 ‘자백은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함께 있어야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 간이공판을 통해 신속히 재판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에도 자백 이외에 다른 증거가 없다면 자백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허위자백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설마 형벌을 받고 싶어 허위자백을 하겠냐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진실과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 지난 2001년 전 옥천서장 허위자백 사건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해당 경찰서장은 부하직원의 거짓자백에 뇌물수수 혐의로 2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등을 인정받아 대전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결국 범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백은 강요가 아닌 자기의 뜻에 따라 이뤄져야하며(임의성) 객관적으로 믿을 만해야하고(신빙성), 자백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보강증거가 있을 때 비로소 유죄의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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